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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성장관…김정례 보사|여권신장·민주추구 30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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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직도 얼떨떨해요. 사방에서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만 정말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제20대 보사부장관 김정례씨(55)-.

<너무 의외라 당황>
1년 과정 여고강습과를 수료한 학력에 바로 얼마 전까지「반체제」의 중심인사로 귀에 익은 김씨의 입각은 이번「민심수습」개각에 가장 큰 화제가 되고있다.
20일 민정당 중앙집행위원 사표가 수리된 뒤 다음날 개각에서 첫 번째 보사부장관으로 발탁됐다.
임영신(초대 상공부장관)·박현숙(4대 무임소장관)·김옥길씨(4대 문교부장관)에 이어 우리 나라 네 번째 여성각료다.
자신의 장관임명을 발표당일 기자들로부터 듣고야 알았다고 했다.『너무 의외라서 당황』했고 벅차『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을 굳이 임명하는 의중을 헤아려 『고사 할 수가 없었다』고.
1백52㎝의 작달막한 키에, 동그스름한 얼굴, 후덕한 중년부인의 인상인 김 장관은 오랜 세월 연단에서 닦인 듯한 관록 있는 목소리와 능변에서 30년 여성투사의 이력을 느끼게 했다.
고향인 전남 온양 담양고녀 특별강습과를 47년 수료하고「사회운동」에 투신했다.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를 수료하고 대표본부 여성부조직책으로 임명된 뒤 대한여자 청년단 총본부조직국장·한국여성유권자연맹 위원장·민주수호 국민협의회운영위원·앰네스티 한국위원회 발기위원·범여성가족법 개정추진회 부회장·민주회복국민회의운영위원….
「여권신장」「민주회복」의 기수로 30여 년간 목소리를 높여왔다. 61년 반혁명 사건에 연루, 12년 선고를 받고 3년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정정법에 묶여 6년간 정치활동을 중지 당하기도 했다. 툭하면 연행·조사의 대상으로 수사기관을 제집 드나들 듯 해온「반체제」의 입장이 달라진 것은 10·26후. 국보위 입법의원에 임명되고 민정당 창당에 참여, 제5지구당(서울 성북)위원장으로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지역구 의원으로 11대 국회에 진출했으며 중앙위원회 부의장, 중앙집행위원의 당직도 말았었다.「새 시대」의 중심멤버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반혁명으로 옥고>
자신의 변신을『나라를 구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일본 동경에서 사업을 하고있는 남편 윤재수씨(55)와는 10년 동안이나 밀고 당기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겨레와 결혼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 생각이었기에 결혼을 하지 않을 결심이었습니다. 한 고향 이웃 면의 동갑 청년이던 남편을 족청운동을 할 때 만났는데 자꾸만 따라다니며 결혼하자고 졸랐지만 그때마다 뿌리쳤지요.』
그러나『당신 아니면 평생을 혼자 살겠다』며 30이 넘도록 구애공세를 늦추지 않는 끈기에 결국은 지고 말았단다. 그때가 32살.『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맞더라며 깔깔 웃는다.
남편 윤씨는 6·25후 일본에 건너갔다가 귀국, 결혼 해 1년 남짓 신혼생활을 지낸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20여 년 김·윤씨 부부는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견우·직녀 같은 기이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 윤씨는 일본동경에서 사업기반을 다져 국내로 옮겨 들어오기가 어려웠고 김 장관은 김 장관대로 사회활동에 바빠 오히려 홀가분한 탓에 어쩌다보니 20여 년째나 별거부부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 김 장관에게 고민이 생긴 것은 지난 77년. 그 동안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오고 1년에 1∼2차례 내왕해 1∼2달씩 머무르고 돌아가던 남편 윤씨가 일본에서 일본여인과 딴 살림을 차린 사실을 알게됐다.
『77년 일본부인 유권자연맹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돼 남편을 찾았더니 그때까지 얌전하게 혼자 지내는 줄 알았던 남편이 일본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지 않겠어요.』

<아들과 함께 살아>
평소「여장부」로 자임해 온 김 장관은 그때 가슴속 질투의 감점에 처음 자신도 역시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거짓말을 몰라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만다』고 말한 김 장관은『여권 운동을 하다 내 여권은 잃은 셈』이라며 다시 한바탕 웃고는『당장 이혼하라』고 아우성 치고 왔지만 『남자는 할 수 없는 것 같다』고 이해하려는 눈치였다. 윤씨는 요즘 내왕이 쉬워지면서 1년에 4∼5차례 왕래하고 수시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김 장관은 비록 사회운동을 하더라도『여자는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한 인간으로서 성숙될 수 있다는 의견.
외아들이 고3. 명륜동 1가 7의 26에 13년 전 남편이 사준 대지1백10평, 건평70평의 2층 양옥에서 가정부 1명과 세 식구가 살고있는 김 장관은 부엌살림은 거의 못해보고 살았지만 음식 맛은 안다고 했다.
맛의 요체는「간」과「불의 조정」이라며 장과 된장은 꼭 자신의 손으로 담근다고 했다. 정원수 가꾸기가 취미. 흑장미와 백합을 특히 좋아하지만 꽃마다 제각기 아름다움이 있는 만큼 모든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려고 애쓴다는 김 장관은『모든 일에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생활태도라고 했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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