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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문화 접목 성공, 뿌리 내린 한미백년|미국 속의 한국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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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7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증가한 미국 내 한인교포 사회는 어느새 60만명을 헤아리는 대 식구가 됐다. 지금도 매년 2만명의 한국인들이 정식으로 미국에 이민을 하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한국에 출장 왔다가 슬그머니 주저앉는 사람, 중남미나 서독 등 제3국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 이미 살고 있는 교포들의 자녀 출생 등으로 한국인 수는 눈사람처럼 불어나고 있다.
주미대사관 집계에 따르면 81년 현재 재미교포 중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은 전체의 25%인 15만명 정도이며 매년 1만명 정도가 미국시민으로 귀화하고 있다.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미국은 열심히 일한 만큼 수입이 보장되는 기회의 나라니까』 『2세들의 교육을 위해』『자유민주주의 체재가 좋아서』등등 나름대로의 이유와 동경 때문에 미국에 몰려든 한인들의 지역사회는 이제 정치인들 자신이 비상한 관심을 쏟을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기부터 본격적인 지역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한인교포들의 가장 큰 특색중의 하나는 경제적 자립속도가 다른 어느 소수민족보다 빠르다는 점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식료품상회나 주유소에 교포들이 대거 진출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 뉴욕의 청과물시장이나 옷가게, 워싱턴주변의 햄버거가게 등이 속속 한국인들 손으로 넘어오고 있다.
약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보험이나 부동산·자동차판매 등에 손을 대거나 세탁소·모텔등을 경영하기도 한다.
이제는 대도시로 이민 오는 웬만한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아도 의식주 모두를 한국인들만 상대해도 해결이 가능하게 됐다.
아직 초보단계이긴 하나 한인교포가 정치적인 세력으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뉴욕 또는 로스앤젤레스 같은데서는 시장 또는 시의원에 출마한 미국인 후보들이 으레 한국인들의 파티에 한두 번쯤은 인사를 와야만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왔다.
교육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한국인들의 관심과 재능은 더욱 뛰어나다.
시카고의 어느 국민학교에선 5학년 전체의 1등부터 10등까지 5명이 한국계 학생이고 볼티모의 어느 중학교의 최우수 졸업생은 3년째 한국계 학생들이 차지했다.
「레이건」대통령은 오는 6윌14일 백악관에서 미 전국에서 선발된 l백명의 최우수고교생들에게「대통령 메달」을 수여할 예정인데 이 중에는 이태구군(미시간주), 염애리양(필라델피아 주)등 2명의 한국학생이 포함돼 있다.
미 상원의원 의석과 똑같이 미국 50개 주에서 각 2명씩 선발돼「대통령메달」을 받게 된 이 영광의 주인공들은 수많은 우수한 한국학생들의 표본이며, 특히 이태구군의 경우 형·누나와 함께 이제 3남매가 모두 하버드대학생이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한인사회가 이같이 급성장을 하게 됨으로써 20세기초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피땀 흘리며 중노동을 했던 이민 1세들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돼 버렸다.
이러한 한인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수시로 고개를 내미는「어글리·코리언」들의 경우가 그렇다.
교민봉사를 자처한 한인단체 간부들의 추잡한 싸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한인교회와 목사들간의 반목. 술집과 뒷골목을 전전하는 한인청소년들의 깡패조직, 한국인들만 골라 사기를 치는 협잡꾼들이, 한국인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량한 교민들이 한푼 두푼 절약해가며 생업에 충실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서 나타난 사람이 30만, 40만 달러 짜리 저택을 현찰로 구입하는 모습이 눈에 뛴다.
아무런 직업도 없이 서울에서 거액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 분명한 이러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교포사회의 눈총은 따갑게 마련이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밤낮 안 가리고 일하는 교민들은 어떤 분노와 배신감이 뒤범벅된 실정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이 같은 부작용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한인사회의 세력은 놀라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대다수 교민들은 지금보다는 앞날에 훨씬 은 기대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한인들의 경제적 적응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아직은 자립기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교포사업체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소규모 가게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에서 막 도착한 사람의 눈에는 한국인식당과 술집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나 아직 같은 동양계의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하면 대만한 열세다.
최고급 호텔과 번화가에는 일본·중국식당이 깊숙이 파고들어 있으나 한국식당은 아직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의 수준 면에서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립기에 접어든 한인사회가 멀지않아 경제적 도약을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60만명 정도인 한국인들의 수가 현재의 증가 추세대로 간다면 오는 2000년까지는 약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의 미국내 아시아계 인구 증가율은 1백25%였는데 한인 수는 이를 훨씬 능가해왔다.
미국 내 한인사회가 지난 70년대에 「양적인 팽창」을 했다면 80년대는「질적인 향상」을 이루는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 실제로 그런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려서부터 미국식 교육을 받고 미국사회에 동화돼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계 이민2세, 3세들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남달리 교육열이 높고 근면한 것으로 소문난 우수한 한인들의 후예야말로 제 2세기를 맞이한 한미관계의 의미를 승화시킬 수 있는 첨병들이다.
다만 이러한 2세, 3세들을 지원, 격려하기 위한 본국 정부의 제반정책들은 이미 미국화 한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게「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무리가 따르거나 획일적인 정책은 오히려 그들의 반감을 조장할 뿐이다.
본국의 정책과 교민사회의 능력이 서로 적절히 조화되고 상부상조를 통한 상승작용을 한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상당한 세력권으로 부상될 수가 있을 것이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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