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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 것은 다 캤다"…애써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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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명명백백한 수사였나 아니면 또 다른 의혹과 구설수에 말려들 것인가.
20일 하오 사건의 사실상 최종발표를 앞둔 검찰의 표정은 결코 홀가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돼 온 이규광 씨가 18일 구속되었지만 그에게 적용된 죄목이「알선 수재」인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옷거리고 있고 다른 사람의 관련설은 거두절미(거두절미)하고『무관하다』로 일관,「검찰수사 미진」또는「수사기피」 의 구실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씨에게 적용한 죄명이 형사소송법상의 타당성이 부여된다해도 나머지 4억2천만원 이란 거액이 단순한 인척간의「도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묵시적 뇌물의 성격이 아니냐 하는 논란이 없지 않다.
발표를 앞둔 검찰의 표정과 수사관계자들의 주장을 단편적으로 엮어본다.
○…18일 밤늦게 이규광 씨를 구속함으로써 사실상 이·장 부부 거액어음 사기사건의 수사를 마무리한 대검찰청은 19일 모두 홀가분한 표정만은 아니었고 간부일수록 초조한 빚을 보여 이사건의 수사여파를 짐작케 했다.
특히 이 사건수사를 총 지휘한 이종남 대검검사를 비롯, 대검 중앙수사부 팀들은 발표를 앞두고 입시를 눈앞에 둔 수험생처럼 안절부절 해 보도진들이 불안할 정도였다.
이들은 지난 11일 검찰의 수사중간발표가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주겠다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의문만 가중시켰다는 안팎의 눈총이 이번 최종 발표 후에도 지속될까봐 큰 걱정이라는 것.
대검은 발표문안 작성작업을 3일전부터 시작, 30여 페이지의 발표문을 완성해 놓고도 국민들로부터 어떤「성적」을 평가받게 될지 예측을 못하는 데다 상부의 결재과정을 거치느라 더욱 초조한 눈치.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시험지롤 오래 갖고 있는 수험생치고 성적 좋은 것 못봤 다』면서「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속담을 들먹이기도 했다.
○…이규광 씨가 연행되던 17일 저녁에는 검찰청사 주변에 느닷없이「설」에 오른 모 인사가 자진 출두설이 진원지도 모르게 나돌아 보도진들은 한때 긴장.
얘기인즉 이날 저녁 중으로 이규광 씨가 구속되고 공영토건 경영진과 가깝게 지낸 모 인사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 결백을 밝힌다는 것이었으나 이씨는 17일을 넘켜 18일 저녁 늦게야 구속되고 문제의 인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이 사건을 둘러싸고 나도는 악성루머(?)의 하나로 판명됐다.
그러나 취재팀들은 사진부 기자를 충원하고 잠자던 기자를 불러내는 등 한때 법석을 떨어야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비호세력」이나「배후세력」이란 단어가 들먹여질 때마다 엄청나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 주목거리.
대검 중앙 수사부의 어느 파장은 이규광씨 구속다음날인 19일 아침『기자들이 바로 배후세력』이라고 엉뚱하게 화살을 돌며 보도진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영문을 모른 기자들이 불쾌한 어투로 무슨 뜻이냐며 해명을 요구, 다그치자 그는『없는 배후를 자꾸 대라니 기자들은 배후를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었다고 둘러댔다.
○…이종남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19일 상오 이사건의 수사시각 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한참동안 만나 그 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부장은『검찰이 상부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은 오해』라며 이번 수사는 절대로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파헤치는 것이었음을 강조.
그는 특히 이 사건은 처음부터 그 중대성을 판단해 상부에 보고했고 최고위층으로 부터『최대한 파헤쳐 진실을 밝히라』는 지시를 받아 전혀 꺼릴 것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이 사건착수 때 주임검사인 2과장 성민경 부장검사와는『역사적인 사건을 맡아 수사결과가 잘되든 못되든 사표를 쓸지도 모른다』며 기왕 그만둘 바에야 모든 것을 파헤쳐 자식들과 후배 검사들에게 오명과 치욕을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정치근 검찰총장은 이 사건이 본격화된 후 거의 퇴청시간은 자정쯤이었고 출근도 아침 7시30분쯤 하고있어 사건의 중대성과 검찰고위층의 관심도를 잘 나타냈다.
특히 정 총장은 출근하자마자 전날 철야 수사한 결과를 보고 받으면서 간부들의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평 검사들을 총장실로 불러 직접 보고토록 하는 등 세심한 곳까지 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듯한 느낌.
정 총장 자신도 수시로 법무부를 찾아 이종원 법무부장관에게 진전사항을 보고하고 수사방향을 협의해 기자들간에는 이 사건을 놓고 한때『보고 위주냐』『수사 위주냐』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검찰의 이번 사건 처리과정을 지켜본 법조계 인사들은『이규광 씨가 두 아들의 결혼축의금으로 받은 1억원은 조건을 붙여 받은 돈이 아니므로 뇌물이 아니다』는 검찰의 견해에 대해『검찰수사에서 이번처럼 사회관념을 넘어선 거액을 축의금으로 용납할 경우 우리 사회에서 뇌물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직무와는 관계없이 추석이나 설 등 명절 때 의례적인「인사」인줄 알고 받아들였다가 그 동안 서정쇄신이나 숙정 바람에 공직을 떠나야 했던 숱한 사람들의 경우도 뇌물의 성격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상식에 어긋나는 돈의 용도를 용인하는 우(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다는 형법 조항을 폭넓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오고간 5억2천만원 중 알선수재부분 1억원 이외의 돈도 순수한「축의금」또는 인척간의「선심」으로 볼 수 없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판단.
동원된 검사도 막바지의 대거충원으로 28명이란 기록적 숫자였고 수사관과 피의자·참고인 등의 그 동안 식사값만 7백여만원이 들었을 정도.
한 고참 수사관은 20년 검찰생활에 율산 사건·현대아파트 사건을 했어도 한 사건 때문에 보름 동안 계속 집에 못 들어간 것도 처음이었다고 했다.
사령탑인 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이 군용 야전침대를 집무실에 갖다놓고 진두지휘하는 바람에 평 검사들은 4∼5일씩 귀가를 엄두도 못내 내복과 Y셔츠를 든 부인들이 검찰청사를 계속 드나들어야 했다.
○…시중은행들은 행장의 지시대로 움직인 지점장이 구속되자『이제는 전당포 소리를 들어도 원리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서류를 철저히 따지는 풍조가 만연.
이들은『은행이 담보만 따지지 말고 사업성에 따라 대출해야 한다고들 해놓고 나중에 사건이 벌어지면 업무상 배임으로 구속한다면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걱정.
또 금융가는 장 여인 사건에 따른 인사파동이 시중은행에서 은행 감독원으로 파급되자 연쇄 인사이동을 점치는 등 술렁.
한국은행관계자들은 당초 배수곤 감독원장의 사임은 예상했으나 이인복 부원장까지 책임을 묻자 다소 의외라며 침통한 표정들.
배원장은 사표가 수리된 19일 한은 기자실에 들러『면목이 없으나 짐을 벗어 후련하다』 고 사임인사를 했다.
그러나 배원장과 이부원장의 사임으로 한은에는 연쇄 승진인사가 겹치고 있다.
○…장 여인 사채파동 여파로 2명의 은행장을 비롯, 관련 은행간부들이 구속 된데 이어 은행감독원의 원장 및 부원장이 사퇴하는 등 산하에서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자 재무부 사람들은 침울 속에 빠져들고 있다.
재무부로서는 어쨌든 감독 부서이기 때문에 장 여인 사건발생 이후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되고있다.
나웅배 재무부 장관은 요즘 사채파동 뒷수습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모습인데 자주 청와대·총리실·부 총리실을 오가며 협의, 19일 하오에는 역시 모처에 다녀온 후 하영기 한은 총재와 은행장으로 내정된 주인기(상업은행) 이헌승(조흥은행)씨를 재무부로 불러 임원에 대한 후속인사에 관해 예기했다.
○…장 여인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구속된 이규광 씨가 장 여인으로 부터 중동계 합작은행 설립교섭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1억원을 받았다는 검찰발표가 있자 재무부는 자체 진상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밝혀진 것은 이승윤 전 장관시절 이철희 씨와 이규광 씨가 따로 이 장관을 찾아 온 적은 있었는데 이 장관은 정부가 계획하는 중동계 은행은 오일달러도입을 위해 현지에 진출한 대 건설업체 중심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그후 그들은 다시 찾아온 적이 없고 얘기도 끊어졌다고 한다.
중동계 은행은 현재까지 합작선 선정 등 진척이 없어 거의 백지상태에 있다.
○…장 여인 사건을 계기로 증권계의 큰손이 증권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밝혀지자 각 증권회사들은 저마다 결백함을 내보이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다.
특히 장 여인의 하수인으로 알려진 김종무 씨의 경력이 삼보증권 을지로 지점장을 지내다 사고를 일으켜 물러났고 그 이후 최근까지 한양증권의 투자고객 상담역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손바람을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사회부·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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