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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포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몇 해 전 서울시내 한 사찰의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날) 풍경-.
신도들이 공양한 수많은 연등이 법당 천장을 가득히 메웠고 앞마당에까지 철사 줄을 맨 장대를 세워 수천 개의 등을 휘황찬란하게 달아놓았다. 등에는 각각 공양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적어놓은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씨 오십만원』-. 법당 안의 연등 중에는 이 같은 꼬리표가 붙은 오색찬란한 대형의 수박 등이 가장 눈에 잘 띄는 중앙의 요지를 차지하고 군계일학의 위세(?)를 당당히 떨쳤다.
또 많은 사찰들의 불상·탑 건립 불사에서 시주자들의 명단이 새져지거나 널리 광고되는 것을 흔히 본다.
불가의 미덕인 포시·공양·시주가 떠들썩한 공리·공명의 파고를 일으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예는 허다하다. 사의 양심까지를 마비시킨 채 온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장진찬행 보살(장영자 여인의 불명)의 갖가지 불사 시주도 역시 본연의 포시행과는 거리가 먼 이 같은 범주의 것이었다.
『보시는 무소주·무왕처·무주상 이어야지 대상과 목적·형태가 있는 포시는 아무 값어치가 없다』-.
금강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즉 은혜란 수혜자가 모를 정도로 조용히 베풀어야지 공리적 계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겸허한 불가의 보시 방법론이다.
이 같은 불교 포시론은 나아가 저 유명한 『아합세왕수결경』의 빈자일등이라는 실감 있는 일화로 이어진다.
아합세왕은 부처님의 왕궁설법을 듣고 밤이 되어 절로 돌아가는 부처님을 위해 왕궁에서 절까지의 길가에 수만 개의 등불을 켜서 공양했다. 한 가난한 노파는 왕의 이 같은 부처님 공양을 기뻐하여 거리에서 동전 두 닢을 구걸, 기름을 사 가지고 부처님 가시는 길가에 등 하나를 켜 놓았다. 새벽이 되자 왕의 공양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노파가 공양한 이 한 개의 등불은 꺼질 줄을 모르는 채 더욱 빛났다.
부처님은 노파의 등불을 보고 이 노파는 일찍이 80억 부처님께 공양을 하였으니 30겁 후에 수미등광여래라는 부처로 환생하리라고 했다.
권세와 부를 지닌 수만 개 등불보다 더 밝았고 꺼질 줄을 몰랐던 가난한 노파의 일등-.
원래 포시(범어 Dana·단나)란 자비심으로 남에게 물건을 조건 없이 주는 것을 뜻한다. 일상적으로는 흔히 신도들이 스님에게 독경을 청하거나 불사를 행하고 보답으로 주는 금전 및 물품 등과 스님이 베푸는 일체의 자비행을 말한다.
그래서 포시는 공양(옷·밥 등을 삼보에 공급 자양하는 것), 시주(보시하는 사람)등의 용어와 같은 뜻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어쨌든 보시는 대승불교에서 보살행의 첫째 덕목일 뿐만 아니라 불교 기본교리의 하나인 자비를 베푸는 방법으로 크게 중시된다. 그래서 보시는 보살이 중생과 갖는 대인관계의 지침인 사섭법이나 보살 행도의 내용인 육파나밀에서 제1항으로 내세우는 덕목이다.
구체적인 포시의 종류로는 상대방에게 주는 내용물에 따라 재시·법시·무외시로 나누기도 한다. 즉 아무 조건 없이 재물을 주는 것과 교법을 가르쳐 선근을 자라게 하는 것,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않고 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도록 해 주는 것 등이 보시의 주 내용이다.
포시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자세가 다같이 일체를 버리고도 모두를 다 갖는「무소유」 의 마음바탕 위에서 있을 때만 본래의 빛을 발한다.
무소유 보시와 천진의 극치를 보여준 혜월선사(1861∼1939년) 의 일화-.
한국불교 근대 비종사의 중흥조인 경허선사의 문하였던 혜월스님은 중국 백장선사의「일일불작 일일불식」을 좌우명으로 삼고 가는 곳마다 절 주변의 불모지를 개간하는 구한말 3대걸승(만공·백룡성·혜월) 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부산 선암사에서 논 2천평을 개간했다. 마을 사람들의 꾐수를 훤히 알면서도 모른 채하고 개간한 논을 단 두마지기(4백평)값에 팔아버렸다.
계약을 마치고 절로 들어오자 대중들이 몰려들어 값을 잘못 받았다고 힐난했다.
혜월선사는『이놈들아, 논 10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여기 두 마지기 값을 또 받았으니 12마지기가 된 게 아니냐.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대중들을 꾸짖었다.
또 그는 양산 내원사에 있을 때 주지가 출타한 틈을 이용, 절에서 먹이는 소를 시장에 갖다 팔아서 대중들을 포식시킨 일이 있다. 주지가 돌아와 소의 행방을 묻자 사문들이 혜월스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혜월스님은 자기 방 앞에와 「스님, 스님 하는 주지의 부름에 「음메, 음메」하며 소 우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주지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옷을 벗고「음메」소리를 연발하며 소 걸음을 흉내내고 있었다.
모두를 버리고도 일체를 소유했고 아무 걸림이 없는 포시의 경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는 이제 먼 옛날 중국 혜능대사가 제창했던 무소득의 마음을 행하는 심불토장엄과 신불토, 세간불토 장엄의 정화이념 아래 승단이나 신도 모두가 미덕의 포시를 널리 베풀어야 하겠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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