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욕설·협박으로 막 나간 공무원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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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산에서 4일 예정됐던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포럼’이 공무원들의 물리적 방해로 무산됐다. [뉴시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부산(4일)과 춘천(5일)에서 예정됐던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포럼’이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10월 24일부터 시작된 국민포럼은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단체·학계·언론인 등이 참석해 연금 개혁 대안을 모색하는 ‘국민 소통의 장’이다.

 4일 부산 국민포럼에 패널로 초청받은 기자는 개혁에 저항하며 탈법적인 집단행동을 벌인 공무원들의 행태를 생생히 목도했다. 부산·울산·경남의 공무원 300여 명은 오후 2시로 예정된 행사장을 미리 점거했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패널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노조원들이 “공적 연금 강화하라” “박근혜를 규탄한다” 등 구호를 외치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시작할 수 없었다.

 한 노조원은 “남의 밥(공무원연금)에 숟가락을 올리지 말라”고 외쳤다. 시위를 주도한 공무원 노조 간부는 “국민포럼을 저지하는 것이 오늘 투쟁 목표”라며 “패널들은 퇴장하라”고 압박했다. 그는 “칼을 든 강도가 여기에 들어왔다”며 “안행부 장관이 얼굴 쳐들고 왔는데 공무원들을 대변하는 장관 맞느냐”고 추궁하듯 물었고 노조원들은 정 장관 면전에서 야유를 퍼부었다.

 이 간부는 “우리가 연습한 욕을 해주자”고 했고 정 장관과 패널을 향해 공무원 300여 명이 일제히 “X발”이라고 외쳤다. 이 간부는 “우리가 1시간30분간 정중하게 여기서 나가 달라고 요구했는데 버티는 이유가 뭐냐”고 협박하면서 “한 번 더 욕을 해주자”고 주문했고 노조원들은 같은 욕을 반복했다. 일부 노조원은 성기를 언급한 욕도 내뱉었고 일부는 패널에게 물도 뿌렸다.

 패널로 나온 안홍순 신라대 교수가 거친 욕설을 참다 못해 “우리나라 공무원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질타했다. 하지만 품위유지 의무를 가볍게 저버린 공무원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발언 기회를 얻은 정 장관은 “공무원과 국민이 못한 말을 하도록 국민포럼을 마련했다”며 “연금 개혁은 여러분과 우리 자손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발언을 제지당했고 결국 오후 3시45분쯤 자리를 떴다. 부산시경 소속 경찰 50여 명은 노조원들의 일탈행동을 막지 않았다.

 안행부는 5일 “노조원들의 방해 행위에 대한 고발 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을 지켜본 행정개혁시민연합 정책협의회 서영복 의장은 “노조는 개혁에 대안을 제시해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올해만 세금 2조4854억원으로 구멍 난 공무원연금을 메워주는 상황인데도 공무원들은 국민이 안중에 없는 듯했다. 법과 공복(公僕) 의식을 내팽개친 공무원은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