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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궁만 준엄…소득은 별무|사채파동이 몰고 온 마라톤 재무위 이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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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영자 여인사건은 국회에서도 시원한 결말이 없었다. 여야가 다같이「진상의 철저 규명」을 다짐하며 13, 14일 이틀 동안 장장 24시간 회의를 강행한 재무위에서도 말은 홍수처럼 쏟아졌지만 중요한 의문점은 풀지 못했다. 재무위에 이은 다음 수순을 놓고 여야는 국정조사권발동·법사위소집 등을 절충하고 있어 정계도 당분간 장 여인 바람 권에서 헤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이틀간 20명 심야까지 질의>
이틀간 심야까지 강행된 재무위에서 20여명의 의원이 질의에 나섰지만 장영자·이철희 부부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재무부·은행감독원의 보고는 검찰발표 선에서 맴돌았고 오히려 공영토건의 주식처분 등 의혹 점만 늘어났다.
여야의 질의는 우선 이규광씨의 비호위장문제에 집중됐는데 박태준 위원장이『이 대목에 관해 사례 한 토막이라도 구체적으로 밝히 라』고 요구했으나 정부측은 끝내 밝히지 않았고 임재수 전 조흥 은행장이 장 여인 결혼식장에서 이씨를 봤다는 말로 간접확인만 됐다.
이밖에 △장 여인이 할인 사용했다는 1천4백76억 원의 내용 △사용 처 미확인 77억 원의 행방 △87억 원의 커미션을 받고 예금해 주었다는 대 전주 명단 △장 여인의 축재과정 △공영토건이 1천2백99억 원의 어음을 초과 발행한 이유 등 검찰발표에서 미진했던 점은 그대로 남았다. 오히려 공영토건이 부도가 난 후에도 회사측 주장만 믿고 증권거래소가 증권거래를 12일간이나 허용한 점, 조흥은행 우도지점과 덕수 지점이 일신과 공영에 후취담보물을 잡은 데 대한 은행감독원의 처사 등 석연 찮은 부분만 늘어났다. 나웅배 재무장관은 장 여인 축재에 대해 애당초 자기 돈으로 굴린 것이 아니라 기업에 꿔 줄 돈의 2배나 되는 어음을 받고 돈도 추후 지불하는 방법을 썼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이 발표한 3백21억 원의 재산취득에 대한설명은 못했다. 77억 원의 행방에 대해서도 나 장관이 질의 도중에 나가 검찰총장에게 전화연락까지 했지만『아직은 수사 중이어서 밝힐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변밖에 못 얻었다.
나 장관은『이런 모든 숫자는 본인진술·기업진술을 토대로 한 추정숫자』라면서『어음 1장, 증권 1구좌까지 샅샅이 추적해 밝히겠다는 게 정부입장』이라는 방침의 천명만 거듭.
재무위에서 새로 드러난 공영토건의 부도 후 주식처분이나 관련은행의 후취담보와 같은 사실도 정부측이 아니라 의원들에 의해 밝혀진 것.

<야서 빛 보자 여 의원 짜증도>
재무위에 임하는 여-야의 입장은 모두『진상을 현저히 규명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진상」에 접근하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민정당 측은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정치자금관련 설 등 당이 피해를 보고 있는 루머를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야당 측은 이 사건 배후의 경치권력 개입여부에 초점을 두었다.
민한당 의원들은 특히 국정조사권발동을 위한 임시국회요구를 위해 정부측의 허점을 찌른다는 계획아래 일문일답 식으로 릴레이식 질의를 전개.
장 여인의 형부 이규광씨 문제에서부터 김태식·이영준·박완규·이재근 의원 등 이 번갈아 물고 늘어져 5차례 정회를 했으며 이 바람에 나웅배 재무장관과 배수곤 은행감독원장의 보고는 6시간이나 걸렸다.
야당의 팀 플레이로 빚을 덜 보게 된 민정당의 최명헌·이자헌·이민섭·김종기 의원 등은『왜 정부당국은 속시원하게 답변 못하나』고 짜증을 냈고, 막판에 박종관 의원은『반 국가사범으로 다루라』『관련업체도 처벌하라』는 등 억양을 높였다.
민정당 측은『감추는 것도 꿀리는 것도 없으므로』(정순덕 의원) 임재수 전 조흥 은행장·공덕종 전 상업 은행장을 부르라고 했을 때도 순순히 응낙.
재무위가 열리는 동안 각 당 수뇌부도 국회와 당사에서 대기, 진행상황을 보고 받고 작전을 지휘. 민정당의 권정달 사무총장은 밤12시까지 당사사무실을 지키며 상황을 보고 받았으며 윤석순 사무차장이 국회와 오가며 연락.
민한당도 유치송 총재가 국회에와 밤늦게까지 의원들을 독려.

<"국회의 기능 총동원" 시사>
재무위가 끝나자 여-야간의 초점은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당초 국정조사권발동에는 민정당이 선수를 친 격이었다. 12일 하오 민정당 중앙집행위가 끝난 후 봉두완 대변인은『국회기능을 총동원할 것이며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간에 민한당 총무단과 골프를 쳤던 이종찬 총무는 14일 재무·법사위 연석회의를 연다는데 대체적인 합의에 이르고 있었다.
12일 당 대책회의에서 재무위에 진상규명소위설치를 요구키로 했던 임종기 민한당 총무는 13일 새벽까지도 방침변경을 생각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침신문에서 민정당이 국정조사권을 검토한다는 사실을 보고는 깜짝 놀라 상오8시 조선호텔에서 열린 3당 총무회담에서「국정조사권을 위한 임시국회요구」로 급선회.
연석회의 안을 제기했던 이 민정총무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된 셈. 이 총무가 당으로 돌아와 설익은 국정조사권의 발설에 짜증을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국정조사를 자청한 꼴이 된 민정당은 거절할 명분은 궁하게 되고 들어주는 데도 문제가 많아 고민이다.
한 관계자는『이제는 안 들어줄 명분은 49%밖에 안 된다』고 자중을 토로하면서 이 사건은 어음전부를 한 장 한 장 추적해야 하는데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고, 해외도피 된 재산은 추적이 어렵다는 등 조사의 난점을 들고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찌꺼기가 남는 사건』이라고 지적. 따라서 국회특별조사 위를 구성해도 △명쾌한 결말이 나지 않으며 △활동기간을 정하더라도 미진하다는 이유로 장기간 연장될 가능성이 있고 △조사대상자 선정·조사방법·보고서작성을 놓고 여-야간에 이견이 생겨 결국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이용될 뿐이라는 분석.
다른 관계자는『이 사건은 국정조사권을 동원해도 미흡한 문제지만 몇 달씩 끌어가면 경제가 엉망이 될 것』이라고도 걱정.
이종찬 총무는『13일까지 버티던 장 여인이 14일부터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수사진전에 희망을 거는 눈치.
민정당으로 서는 따라서 일단 검찰수사발표까지 이 문제의 결정을 미루도록 지연전술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 민정당은 △국정조사권발동 방안에서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대정부질의만 하는 방안 △검찰발표 후 재무위를 다시 열거나 △법사·상공 위 등 관련상위를 모두 여는 방법 △관련상위 연석회의를 여는 방법 등 가능한 한 모든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국정조사권 발동은 일단 제외된 것이 확실한 듯.
반면 민한당은『국정조사권 발동을 위한 임시국회소집 요구는 명분상 안 들어줄 수 없을 것』(임 총무) 이라면서『따라서 안 들어줄 경우의 대책 따위는 생각해 본 일도 없다』고 무척 낙관적인 태도. 임 총무는 한술 더 떠『임시국회에서는 장 여인 사건만이 아니라 잇단 충격적 사건의 밑바닥을 파헤치기 위해 국정전반을 의제로 해야 하며 회기도 길어야 한다』고 주장.
이만섭 국민당부총재는 『이번 사건의 초점은 권력개입 여부인데 재무부·검찰 등 권력 내 기관으로는 충분한 조사를 못한다』며『국회가 모든 관련자를 불러 차근차근 따져야 한다』고 국회기능을 강조.
결국 국정조사권발동여부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달리게 됐는데 그 결과를 보는 여야의 시각이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고 보면 국회가 또 한차례 장 여인 후유증으로 진통할 것은 뻔하다.
또 이 사건으로 예상되는 인책이나 행정수술 등에 따라 정·재계에 예상 밖의 큰바람이 불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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