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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장 여인 지하 은」들러리였다|사채파동「주역」과「조역」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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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영자 여인의 사채파동 사건-. 그것은 한 여자의 단순 작품이 아니다. 뒤를 봐준다는 큰 『배후』를 이용(조사 발표된 것으로는 위장 이용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했고 은행장이 방조(?)했고 대기업의 사주들이 조역을 했다. 이 사건은 경제질서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피해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어쨌든 빨리 수습돼야 한다. 이 사건은 어떻게 발전될 것이고 수습될 것인지 정치·경제·사회부의 취재기자 좌담을 통해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보기 드물게 요란한 검찰의 발표가 있었지만 장 여인 사채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한 둘이 아니 잔 습니까.
-많지요. 첫째 장 여인이 짧은 기간에 거액의 재산을 불린 축재과정이 명확치 않고, 둘째 장 여인이 굴린 돈의 상당부분이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며, 셋째 은행을 쥐고 흔든 장 여인의 배후에 대해서도 그간 증시에 나돌던「임금님 귀」의 소문들에 비해서는 충분한 해명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뒤늦게 추가한 혐의>
-이번 사건은 사실상 80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장 여인이 견질 어음을 받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거든요. 견질 어음이란 얘기는 그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것 아닙니까.
-어찌 보면 이번 사건은 그 성격상 끝까지 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정치적인 상황을 떠나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만을 생각에 넣는다 하더라도 만약 수사가 사채시장을 샅샅이 훑기 시작한다면 경제가 마비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정부나 검찰이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지요.
-외미 도입사건 때도 그랬지만 이번 사건도 당국이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처리하려 했다가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장 부부를 처음에는 단순한 외환관리법위반으로만 처리하려다가 뒤늦게 범행사실을 확대해서 발표해 오히려 더 큰 의혹을 산 것이지요.
검찰에서는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겠다고 해서 사건을 발표했는데 발표하고 나니까 의혹이 더 많아진 반응이 나오자 당혹하는 것 같아요.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고위층도 검찰의 수사결과발표가 있은 후 세간의 모든 여론을 빠짐없이 수집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더군요.
-설사 장 여인의 모든 범죄사실이 누구 나가 납득이 가도록 낱낱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신감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고 해야겠지요.
-이번 사건으로 인한 문책범위는 어디까지 확대될 것 같습니까.
-앞으로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확대될까 하는 것은 상당히 미묘한 문제입니다. 현 단계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아 몇몇 은행장들이, 이를테면 속죄양이 되지 않을까요.
판례로 보면 율산 사건의 경우와 같이 부실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준 은행장들이 배임혐의로 묶인 적이 있습니다. 배임으로만 따지자면 이번 사건의 책임은 율산 사건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급전조달 창 막혀>
재무장관 인책 설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이번 사건이 의령사건의 경우와 같이 곧바로 주무장관의 책임을 물을 성질도 아니 잖 습니까.
한가지 특이한 것은 광진공 사장 이규광씨가 스스로 사표를 낸 것으로 되었고 또 임재수 조흥은행 장·공덕종 상업은행장이 물러났는데 그 선으로 국민들이 납득할는지가 문제죠.
-금융 가에서는 장 여인의 일격에 쑥밭이 되어 버렸다는 말까지 나와요.
사건이 터지자 사채시장은 올스톱이고 단자회사들도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소위 기업들의 급전조달창구가 일제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마저 혼이 난 나머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에 대한 지급보증을 일체 중단하고 있어요. 5월부터 연말까지 순전히 빚을 갚기 위한 회사채발행예정 액이 무려 1조원에 달하고 있는데 기업들로서는 여간 초조하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그동안 급전조달에 큰 몫을 해 온 CP(신종기업어음) 거래도 절반으로 뚝 떨어지고 있으니….
-기업만이 아니에요. 장 여인이 그처럼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다면 그 피해자도 엄청나다고 봐야겠지요.
문제의 공영토건 어음의 경우 약 1천5백억 원이 전국적으로 널려 있고 특히 어음이 본격적으로 나돌기 시작할 때가 마침 퇴직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올 시기라서 퇴직금 탄 돈으로 어음 샀던 사람들이 상당수 물려 있다는 겁니다.
-금융의 생명은 신용인데 이번 장 여인 사건은 바로 이 신용질서를 교묘하게 악용하던 끝에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가 버렸다는 것이 근본문제입니다. 금융공황, 즉 신용공황의 촉발 제 역할을 한 셈이지요.
-정부 쪽에서도 그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어요. 우선 급한 대로 은행을 텅해 돈을 풀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당초 목표했던 올해 총통화증가율 20∼30% 수준은 상당히 후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긴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아 그걸 따질 경황도 아닙니다만.
-관계부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떠는 것 같은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책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검토」에서 끝날 것 같아요. 예컨대 예금이나 증권투자에 기명 제를 실시해서 차등과세하자는 것 등 이 다시 논의되고 있는데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 잘 되겠습니까.
더구나 이번 사건이 금융제도가 잘못된 탓이라 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병리적 현상이 곪아터진 것인 만큼 금융제도를 자꾸 뜯어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요.
-수법 면에서도 장 여인의 솜씨는 금융제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율산 파동 때와 비교해 본다면 율 산은 은행을 상대로 대출을 얻어내고 이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실패한 케이스지만 이번 장 여인 사건에서 은행은 하수인에 불과한 것이었어요.
사채시장이라는 거대한 금융조직이 장 여인에게는 자기가 세운 개인은행이나 다름없었고 시중은행은 들러리로 옆에 서서 장 여인의 신용을 지급 보증해 주는 격이었습니다.
-우선 불을 꺼야 하는 문제가 공영토건·일신제강을 비롯해 관련 6개 기업에 대한 대책인데 정부는 연일 대책회의만 했지 묘방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지원해서 구제하려 하니 워낙 규모가 엄청나서 말입니다.

<지하경제 대책부심>
공영·일신은 종업원대책·채권자들에 대한 판 제 등 이 남았는데 어쨌든 공영·일신의 어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당분간 돈올 받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 여인이 돌린 공영·일신 두 회사의 어음만도 2천억 원이 되니 문제는 심각합니다.
대양금속이나 라이프주택 등 다른 기업은 자체능력도 어느 정도 있고 경부도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위기는 극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영토건은 법정관리에 맡겨 일단 기업은 살린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살아나긴 힘들다고 보아집니다. 제조업체와 달리 건설업종은 원래 위험부담을 안고 외줄을 타는 업종이므로 법정관리의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지요. 의암댐 공사를 맡았던 파일 산업의 경우가 은행관리에 실패했던 케이스입니다.
-이번 사건은 우선 경제적으로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수습대책이 나와야겠고 또 하나는 사건의 의혹을 하루빨리 명쾌하게 풀어 주어야 가라앉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13일부터 열리는 국회재무위원회의 진행결과가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자금과 관련 없다는 검찰발표가 나와 여당에서는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시중여론은 그렇지 않거든요.
-민정당은 당초『우리는 깨끗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흙탕물이 튈까 봐 몹시 신경을 썼습니다. 너무 커지면 곤란하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12일에는 검찰의 2차 발표가 미진하다는 태도로 바뀌어 야당과 보조를 맞춰 정부에 대한 책임추궁을 한다는 태도입니다.

<터질 때마다「속죄양」>
-민정당이 태도를 경화한 것은 지난번 쌀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선거자금에 대한 루머, K의원과 이번에 문제가 된 K회사와의 관계 등 때문이죠.
-K의원은 지난 9일 고위층에 불려 갔는데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는 점을 밝혔다는 얘기도 전해지더군요.
-사건이 사건이니 만큼 커다란 정치문제로 확대될 공산인데 국회에서 인책공세가 거세지지 않을까요.
-민한당 등 야당은 이미 부총리와 재무장관의 인책사임을 요구하고 정부답변을 들어본 뒤 건설·상공장관의 인책여부도 결정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의정동우회도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면 현 내각이 퇴진해야 한다고 벌써 포문을 열었죠.
-여하튼 야당 측은 진상규명을 위한 소위를 구성하자고 나서 단계적인 인책공세를 편다는 작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민정당도 자기들의 결백을 입증하고 국민에 대한 의식 때문에 어느 선까지 열을 올리고 속죄양을 만들지 모르죠.
-글쎄, 정치적인 차원에서 예컨대 관계장관 하나 인책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나웅배 재무부장관은 취임한지 얼마 안되고 거기다 장 여인의 사채파동 등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좀더 근본적인 성의를 보이지 앓고 속죄양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지요.
-배후가 속 시원히 밝혀지고 거금의 행방을 밝혀 그에 따른 응분의 엄격한 처벌이 나와야 국민의 분노는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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