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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천국, 아스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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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아스펜 음악제의 주무대인 베네딕트 뮤직 텐트에서 7일 바이올리니스트 초량린과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세종솔로이스츠. [아스펜 음악제 사무국 제공]

▶ 스키 슬로프가 시작되는 해발 3018m 고지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 열리는 산정(山頂) 음악회.

컨트리 가수 존 덴버가 부른 노래 '로키 마운틴 하이'의 배경이 어딘지 아시는지. 하늘을 찌를 듯 숲을 이룬 사시나무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마을, 1880년대 은광(銀鑛)으로 번성했으나 1893년 금본위제를 채택한 셔먼법으로 은 가치가 폭락하면서 폐광촌이 돼 버린 곳, 스키· 골프· 래프팅·하이킹·산악자전거·낚시 등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바로 '미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콜로라도주 아스펜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현악 앙상블 '세종솔로이스츠'(예술감독 강효)가 7일 아스펜 해리스 콘서트홀(500석) 무대에 섰다. 공연은 흔히 접할 수 없는 의욕적인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독일 작곡가 칼 하르트만의 '장례 협주곡', 구스타프 말러가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현악 합주를 위해 편곡한 '죽음과 소녀'를 연주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창단 1년 만인 1996년 아스펜 음악제 데뷔 무대에서 연주했던 텔레만의 '돈키호테 모음곡'도 다시 들려줬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5명의 단원 중 한국계가 10명인 현악 앙상블. 탁월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지휘자 없이도 치밀한 앙상블을 빚어낸다. 이튿날엔 아스펜 음악제의 주무대인 베네딕트 뮤직 텐트(2050석) 무대에 섰다. 대만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초량린과의 협연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했다.

내달 21일까지 9주간 계속되는 아스펜 음악제는 1949년 7월에 열린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행사가 모체. 당시 바이올리니스트 나단 밀스타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오르가니스트 겸 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56년이 지난 지금 350회 공연에 수만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찾는 세계 굴지의 음악제 겸 음악학교로 발전했다. 연간 예산은 1500만 달러(약 160억원). 수업료를 전액 면제할 뿐 아니라 2250달러(약 250만원)의 생활비까지 주는 펠로십 장학생도 있다. 한국인 연주자(교수)로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효(줄리아드 음대).임원빈(신시내티 음대).이경선(오벌린 음대) 교수와 재미 소프라노 유현아씨 등이 참가했다.

올해의 주제는 '자화상'.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등 작곡가들의 자전적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는 대표작들을 골라 연주한다. '금지된 음악' '남미에서 온 음악 엽서' '바로크 음악 여행'등 7일짜리 미니 페스티벌도 마련했다. '음악의 날'로 정한 12일엔 아스펜 전역의 거리.호숫가.레스토랑.쇼핑몰 등에서 하루 종일 무료 음악회가 열린다. 목요일 오후 3시30분에는 유서깊은 가정집 저택에서 '하우스 콘서트' 도 마련한다.

초창기에는 학생들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은 적도 있었다. 30년째 아스펜 음악제에 참가하고 있는 강효 교수는 "아스펜이 고급 휴양.문화 도시로 성장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부자동네로 바뀌었다"며 "아스펜 음악학교가 별도의 캠퍼스와 기숙사를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20여년간 케네디 센터 시어터 체임버 플레이어스 단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95년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단했다. 아스펜 음악제에 참가해온 노하우를 기초로 지난해 강원도 평창군 용평에서 '대관령 음악제'를 만들었다. '한국의 아스펜'을 꿈꾸며 올해 2회째를 맞는 대관령 음악제는 8월 3~19일 용평 리조트 등지에서 열린다.

아스펜(미국 콜로라도주)=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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