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런던 연쇄 테러] 런던 시민, 나치공습 때처럼 침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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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중심가를 뒤흔든 연쇄 테러에도 불구하고 런던 시민들은 침착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런던은 충격을 받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고 8일 보도했다. AP통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공격인 이번 테러에서 런던 시민들은 나치 독일의 전폭기가 런던을 공습했을 때 보여줬던 강인함과 단합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 참사 속에서도 질서=사건 현장에 있던 생존자들은 서로를 도우며 질서있게 현장을 빠져나왔다.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난 지하철 전동차에 타고 있었던 레이첼 맥페이디엔(34)은 "간혹 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서로 침착하자고 격려했다"며 "'오늘 지각했다고 혼내는 상사가 있으면 이번 역에서 내리게 하자'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대피령이 내려진 건물에서도 직장인들이 침착하게 움직였다.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버스 정류장마다 수백 명씩 승객이 몰렸지만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줄을 선 채 질서 있게 버스를 기다렸다.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지도를 보며 걸어서 퇴근한 회사원 에릭 프록터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친절해졌다"며 "서로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서곤 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인 관광객 잉가 고든은 "거리가 얼마나 차분하고 고요한지 믿을 수 없을 지경"이라며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은 채 말없이 거리를 걷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가족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게끔 기꺼이 휴대전화를 빌려주었다.

런던 시민들은 테러 발생 다음날인 8일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평상시처럼 직장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면서 '튜브'라고 불리는 지하철역들로 총총히 들어가거나 정류장에서 줄을 서 버스를 기다렸다. 일부 시민은 앞으로는 같은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는 승객들의 가방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으나 대부분은 이번 사건에 개의치 않고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테러 공격으로 폭발한 버스인 3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시스 아부자(56)는 "어제(7일) 일어난 일은 끔찍하나 우리는 평시처럼 행동할 것"이라며 "런던 사람들 대부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샐리 히그슨(36)도 "전날 할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 오늘 출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할아버지는 89세이신데 전쟁에서도 살아남으신 분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전했다.

◆ 완벽한 응급체계=테러가 발생한 뒤 불과 몇 분 만에 구급차가 출동하고 병원이 비상체제를 갖추는 등 응급체계도 완벽했다. 이스트 런던에 있는 로열 런던 병원은 일상적인 치료는 중단하고 비상연락망에 따라 비번근무자까지 모두 불러내 정오까지 100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치료했다. 첨단 의료시설을 갖추고 최근에 개업한 유니버스티 칼리지 병원은 비상사태 발생을 확인하자 창고에 보관해 둔 장비까지 총동원해 신속하게 대처했다.

◆ 국민 단합시킨 블레어=블레어 총리의 순발력 있는 대처도 영국민을 단합시켰다.

사건 당일 주요 8개국(G8) 회의에 참석차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블레어 총리는 사건 발생 직후 정상회의를 중단하고 즉각 런던으로 귀경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이어 블레어는 긴급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영국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블레어는 "오늘은 영국민에게 매우 슬픈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적인 삶의 방식을 굳게 지킬 것"이라고 다짐해 영국민들을 단결시켰다.

AP는 질서의식과 차분함의 배경으로 ▶영국인 특유의 침착한 국민성▶과거 IRA 테러를 겪은 경험 등을 꼽았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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