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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6국 지점서 '한국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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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달 30일. 세계 56개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 지점에서는 일제히 '한국의 날(Korea Day.사진)' 행사를 했다. 4월 15일 제일은행을 인수한 SCB가 SCB 세계 주요 지점과 제일은행 두 조직의 통합을 위해 만든 행사다. 제일은행 측은 60명의 직원을 뽑아 아프리카.중동.유럽.미국 등의 SCB 지점 22곳에 파견했다. 이들은 한복을 입고 현지를 방문, 태극 무늬 부채와 한과 등을 나눠주며 한국과 제일은행을 알렸다.

SCB는 제일은행을 포함해 세계 56개국에 950개 지점이 있다. 이중 제일은행 지점이 절반에 가까운 406개다. SCB는 조직 통합이 끝나면 제일은행의 이름을 'SC제일은행'으로 바꿀 예정이다. 지난해 2월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은행이 최근까지 조직 통합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SCB는 통합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박4일간 '한국의 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제일은행 직원들은 세계 곳곳의 SCB 문화를 동료에게 알리고 있다. 이들의 방문기를 골라 실었다.

◆ 홍콩(e-뱅킹부 이효권 과장)=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감동했다. 고객과 나란히 앉아 모니터를 보며 속삭일 정도로 친밀했다. 더운 날씨에도 모두 긴 팔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글로벌 은행답게 영어에 능통한 직원들을 보니 하루빨리 영어 실력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홍콩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홍콩은 '한류 열풍'으로 뜨거웠다. '한국의 날' 행사장에는 TV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인 이영애씨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한국학교 어린이들의 민속음악 공연이 펼쳐졌고 한국음식 먹어보기 행사도 열렸다. 저녁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홍콩 직원이 많았다.

◆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서울 개봉동지점 김호성 행원)=9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탔다. 새벽 2시에 도착했는데 바깥 기온은 섭씨 38도였다. 처음 겪는 '살인적인' 더위였다. 그러나 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내 냉방장치였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호텔 등 빌딩 안은 말 그대로 한겨울이었다. UAE 은행은 국제적인 은행이었다. 직원 1500여 명 중 70%가 인도.스리랑카인 등 외국인이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 영어로 원활하게 대화했다. 현지 직원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마치 가족처럼 대해줬다. 대부분의 은행원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전문가였다. 국제적인 은행의 일원이 된 것을 여실히 느꼈다.

◆ 우간다 캄팔라(서울 사당동 기업금융지점 서동신 과장)=공항을 나서니 넓은 초지에 야자수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수도인 캄팔라 시내로 들어갔다. 총을 멘 군인과 경찰이 곳곳에 서 있었다. 우간다 SCB 본점 청경도 총을 메고 근무했다. 우간다에서는 허가만 받으면 누구나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1남2녀를 둔 가장이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폭소가 터졌다. 알고 보니 우간다는 일부다처제 사회며 자식도 많이 두고 있었다. 둘째 날 방문한 한 지점의 지점장은 올해 30세의 여성이었다. 말단 창구 직원으로 시작해 5년 만에 지점장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네팔 카트만두(IT유지팀 강선희 부팀장)=네팔에서 가장 바쁘다는 카트만두 지점을 방문했다. 1층 객장에서 한국의 날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었다. 태극선 부채를 선물로 가져갔는데 직원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남녀 직원이 반반이었다. 네팔 직원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노동자들이 본국에 송금할 때 제일은행과 카트만두 지점을 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까지 네팔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할 때 많은 수수료를 물어가며 사설 브로커를 이용해왔다고 했다.

◆ 싱가포르(경기도 백석역지점 박정윤 대리)=호텔에서 싱가포르 지점 직원 대표들과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날' 행사를 했다. 싱가포르 측에서 구절판.두부전.김치 등 한국 음식을 마련해줘 현지인들과 나눠 먹었다. 싱가포르 SCB에서는 '한국의 날'을 기념하고 제일은행을 소개하는 엽서를 만들어 이날 전 직원과 방문 고객들에게 나눠줬다. 엽서 뒷면에 10원짜리 한국 동전이 붙어있어 무척 반가웠다.

최준호 기자

나골왈라 제일은행 이사회 의장

SCB의 제일은행 통합 작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제일은행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영어 사용 등 불합리한 통합추진 사례 신고센터 운영, 신분 비밀 절대 보장'이라는 창이 뜬다. SCB 쪽에서는 "앞으로 출범할 SC제일은행 내에서 공용어는 한국어"라고 밝혔지만 언어 사용 문제에서부터 갈등을 겪고 있다.

인수 작업이 끝난 직후인 4월부터 제일은행 이사회를 이끌고 있는 카이 나골왈라(55.사진) 의장은 "SCB는 제일은행의 시스템과 관행을 존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SCB는 다른 나라에서도 인수한 지역 은행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다"며 "한 조직이 다른 조직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양 조직의 장점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통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골왈라 의장은 "베트남과 태국 등의 SCB 지점에서도 공식 언어는 현지어"라며 "한국 직원과 업무를 할 때는 통역을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도 델리 출신인 나골왈라 의장은 1988년 싱가포르 현지법인 직원으로 입사했으며, 현재 그룹의 기업금융 총괄이사와 아시아 총괄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의 날' 아이디어는 나골왈라 의장의 작품이다. 지난 4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머빈 데이비스 SCB 회장과 칵테일 파티를 하다 불현듯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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