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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면|박삼중(교도소 포교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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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불교는 돈오견성의 대각과 함께 인간생명은 물론 풀 한 포기의 생명까지도 절대 중시하는 생명에의 외경심을 근본교리로 삼는다. 그래서 출가불자나 재가불자 모두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의 계율 중에서도 「불 살생」을 첫 번째 지계로 삼고있다.
대승불교는 불 살생의 계율에 따라 일체 만물이 불성을 가졌다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이타행의 구제주의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평등주의를 최상의 수도목표로 지향한다.
최근 국민의 경악을 불러일으킨 의령경찰관의 주민살상사건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불심의 마비요, 인간적 측면으로는 이성의 몰락이다.
인간양심의 순화와 인륜의 기강을 바로잡는 게 종교의 현실적 사명이라면 한국의 각 종교는 물론 더욱이 불교의 경우 이번 사건에서 불 살생의 기본교리를 널리 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금할 수 없다.
우리국민 모두는 2천5백여년 전 인도 카필라바스루국에서 출생한 「고오타마」가 부귀를 버리고 출가, 보살로 명상의 수행을 거쳐 대각한 후 부처님이 된 인류의 스승 석가여래의 탄일을 기리는 이번「부처님 오신날」을 더욱 착잡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되씹어봐야 할 것 같다.
석가여래는 본래 오고 감이 없다. 오되 옴이 없이 왔고, 가되 간다는 생각 없이 갔다. 오고 감에 있어 자유로운 분이 여래이다. 곧 의식과 교리와 사고의 얽매임의 포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석가의 법신은 영원히 이 세상에 상주한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부처님이 열반했다고 한다. 열반이란 이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떠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고통의 육체가 갔을지언정 법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심을 가리킨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법, 즉 진리로 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사람들은『부처님이 다시 오신다면 어떻게 포교하실 것인가』라는 가설을 세우고 말하기를 즐긴다. 곧 현대사회에서의 불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숨쉬며 살고있는 이 시대, 그리고 대한민국에 오늘 부처님이 다시 오신다면 어떻게 포교를 하시고 어떠한 행동으로 살아가실까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내가 한 사람의 승려로서, 더 나아가서 이 시대를 살고있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부처님의 생애와 비교를 해보는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자비적 삶을 흉내내기에 바빠 있고 그것을 닮으려고 몸부림치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도 그런 부류에 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교도소 포교사로서 부처님 말씀을 몇 마디 전하고 포교사인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픈 영혼을 치유하고 그들이 사회로 복귀했을 때 그들의 시한폭탄 적인 악성을 제거해주는 행동이 나에게는 없었다. 아마 지금부처님이 오셨다면 그늘진 곳의 인간, 고통 당하는 인간, 소외된 인간들을 찾아 나서서 다 떨어진 펑크난 구두조각을 신고 그들을 돕고있을 것이 아닐까.
사찰은 비대해지고 또 교회도 비대해지는 것이 현 한국종교다. 사찰은 웅장하게 수없이 건립되고, 교회당도 건립된다지만 오늘의 한국종교에는 정말로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자비와 사랑의 행동이 부족한 것 같다. 오늘의 사회에 다시 부처님이 오신다면, 부처님은 사찰의 전재산을 복덕방에 매물로 내어놓고 팔아치워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사들이는 일을 하실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사찰의 재산을 판돈으로 모든 범죄를 사들이고, 아픔을 사들이고, 가난을 사들여서 자비정토를 이룩하실 것이리라. 이와 같이 행동에 옮기실 분이 부처님이실 것이다.
나를 비롯한 불교인 그리고 모든 종교인은 부처님의 그러한 행동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사회의 모든 범죄를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그 죄는 그 한사람의 죄가 아니다. 우리는 공범자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어쩌면 교사자일지 모른다. 우리 종교인은 이 사회의 온갖 죄악의 공범자의식을 갖고, 모든 죄악이 곧 내가 저지른 범죄라고 생각해서 치유에 힘써야 할 것이다.
부처님이 오늘 이 시대에 서울의 만원버스를 타고 돌아다니신다면 그는 한번이라도 좌석에 앉지 않았을 것이다. 자비를 실천한 부처님의 생애를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최상의 신앙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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