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잊혀진(?)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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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소재로 한 1980년대 대중가요에 '잊혀진 계절'이 있다. 여기에서 '잊혀지다'는 '잊다'의 피동형 '잊히다'에 피동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중복 사용한 형태다. '잊힌 계절'로 쓰는 게 원칙이다.

우리말에는 피동형이 낯설다. 피동형을 만드는 데는 피동접사를 넣는 방법(먹다→먹히다)과 '-어(아)지다'를 붙이는 방법(좋다→좋아지다)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피동형에 '-어지다'를 붙이는 피동의 중복 형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래 예에서 보듯 피동의 중복은 글의 간결함을 해쳐 맛깔스러운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나뉜)

*히라소니라 불리워지는(→불리는)

*행복하게 보여집니다(→보입니다)

'-되어지다'도 '-되다'에 '-어지다'가 중복 사용된 형태로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렇게 판단되어지다(→판단되다)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어지다(→생각되다)

그러나 다음의 말들은 피동의 중복처럼 보이지만 피동의 중복이 아니다.

*수사의 대상이 '좁혀지다'.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겨지다'.

남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내켜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창조적이며 발전의 원동력이다. 글을 쓸 때 피동형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우리말답게 말과 글도 능동형으로 표현하자.

한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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