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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러시아의 봄은 우리보다 좀 늦다.라일락이 피려면 5월초순은지나야한다.·
「롤스토이」 의 명작 『부활』 에 등장하는 「카튜샤」 의 라일락일화가생각난다.라일락꽃이 한잎,두알막 질 무렵이었다.
「카튜샤」 는 「네플류도프」 공작을뒤따르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라일락꽃으로 가리는 장면이 있다.그녀는 라일락 가지를 꺾어 하나는 자신이또 한가지는 「네퓰류도프」에개 전한다. 공모의징표였다.
그 화사한 꽃의 색깔하며,화려한 향기는 소설이 아니라도 서정적이고,로맨틱하다.청순한 시절의 「카튜샤」 의 마음을 흔들고도남음이 있울 것같다.
요즘의 자연은 무슨 릴레이경주라도 하는 것같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의 바통을 라일락이 받아들고 온동네를 누비고 있다.
유럽 시인들의 라일락예찬은 대단하다. 「T·S·엘리어트」의 그유명한 『4월은 잔인한 달…』 의귀절도 얼어 붙은 땅에서 라일락뿌리를 흔들어 깨우는 얘기다.
자연의 시인 「W·휘트먼」 이 『나는 영원히 돌아가는 봄을 애도했고, 또 애도할 것이다』 고 읊은 시도 라일락을 두고한 노래다. 라일락이 지고난 봄을 애도한것이다.
라일락은 영명이고,원래 우리이름으로는 「수수꽃다리」 다. 촘촘히 들어박힌 꽃떨기가 흡사 수수꽃을닮은 때문이었을까. 불어로는 「릴라」, 한자명은 「정향」이다.라일락의 어의는 파이프 (잠) 라는 뜻. 터키사람들은 라일락나무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한다.
라일락의 원산지는 유럽이다.우리나라엔 일본을 거쳐 전해진것 같다. 우선 번식력이 강해 접목을 해도잘산다. 나무에 벌례가붙지않아 한여름에도 푸른 잎사귀가 운치를 잃지 않는다.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는 향기는 후미진 골목길에 한 그루만있어도 온 동네를 향기속에 묻히게 한다.신춘의 무드를 돋우는 꽃으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없다. 개화는 한발 늦지만 그향기로 하여 모든 꽃을 압도한다.
꽃색깔은 백색, 자색을 흔히 보지만 ㄱ자색도 있다.자색계통의라일락은 동감,이란,코카서스지방에서 자생하고 있다. 취향나름이겠지만 꽃색깔은 역시 백색이라야 제격인 것같다. 이쪽이 향기도 훨씬 높다.또 백색은 어딘지 청결하고 신선감도 더하다.
생활의 즐거움은화려한욕망이나그성취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계절의 리듬을 음미하며,한 송이꽃의 향기와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고 감동하는 것도 즐거움일 수 있다. 아니,그런 마음의 여유를잃지 않는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좁은 마당 한 구석에서 피어난 라일락, 어느집 담장너머로 구름처럼 만배한 라일락꽃을 보면서도 우리는 새삼 생명의 줄거움을 만끽할수 있다.바로 요즘은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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