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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황우석 교수를 위한 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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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우석 신드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배아 파괴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로부터 줄기세포 연구가 과학자.기업.언론 등 기득권 자본의 결탁이란 음모론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기자는 의견을 달리한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대표적인 세 가지 비판에 대해 짚어보자.

첫째, 배아도 생명이란 비판이다. 배아란 수정 후 14일 이내의 세포덩어리 단계를 말한다. 가톨릭 등 종교계에선 배아부터 생명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과학에서 바라본 배아는 다르다. 세포는 생명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100조 개의 세포로 이뤄졌지만 '세포=생명'은 아니다. 세포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위와 간과 혈액 등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중 10년 전 세포는 일부 뇌세포를 제외하곤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세포가 몽땅 뒤바뀌었음에도 10년 후의 '나'도 여전히 '나'다. 생명은 세포 이상의 존재란 뜻이다. 물론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인간이 태어난다. 배아를 생명의 씨앗으로 보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은 배아뿐 아니라 살점이나 혈액 등 다른 세포에서도 가능하다. 그것이 조물주가 만든 세상이다. 복제양 돌리 이후 깨닫게 된 사실이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효능이 과대포장됐으며 설령 성공하더라도 부유층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이다. 줄기세포가 모든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황 교수의 업적이 '세포 치료'란 전무후무한 의학을 앞당긴 초석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같은 발전 속도라면 당대에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줄기세포가 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 부유층 독점에 대한 시각은 편협하기 짝이 없다.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대표적 사례다. 처음 탄생했을 땐 생산량이 적어 폐렴에 걸린 처칠 등 중요한 인사에게만 제공됐다. 그러나 지금 페니실린은 몇백원이면 누구나 맞을 수 있는 값싼 약이 됐다.

셋째, 황 교수팀에만 연구비가 몰려 다른 기초의학 연구의 씨가 말라간다는 우려다. 기초의학은 고루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파이를 키우는 것은 좋지만 파이를 단순히 쪼개는 것은 곤란하다. 선택과 집중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오히려 줄기세포를 중심으로 국내 생명공학 연구체계가 재편돼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의 탄탄한 연구역량을 감안할 때 한눈 파는 사이 황 교수팀의 비교 우위는 추월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건전한 비판은 적극 수용돼야 한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순 없는 일이다. 인간 복제 등 부작용이 100%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황 교수에게 따져 묻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그가 신이 아닌 다음에라야 어떻게 예견되는 모든 부작용에 대해 완벽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연구에 정진하면 되며 시민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줄기세포와 관련해 이미 우리 모두는 황 교수와 같은 배를 탔다고 봐야 한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