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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솜씨 따라했더니 세상에 하나뿐인 ‘DIY 주얼리’ 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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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18면

‘예술사’ 관련 수업은 이론 중심이지만 간단한 실습이 이어진다. 주얼리의 영감과 상징에 대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실물들을 직접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해 본다.

“공부해야 하는 술이에요.” 와인 애호가들을 만나면 너나없이 하는 얘기다. 포도 품종은 물론이고 산지의 토양, 기후, 숙성방식 등 갖가지 변수를 깨쳐야만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와인은 알고 마실수록 그 가치가 달라진다.

반클리프 아펠의 ‘홍콩 보석 스쿨’ 르포

프랑스 하이 주얼리·시계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도 똑 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와인이 아니라 보석이다. 보석의 진가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이 아니라는 것. 하여 그 예술적 깊이와 감흥을 알리기 위해 2012년 ‘레꼴(L’Ecole·학교)’을 열었다. 주얼리 전문가가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보석에 관한 이론과 실제를 모두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갖췄다.

호응은 놀라웠다. 불과 2년 만에 학생 수는 33개 나라에서 온 26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쯤되자 브랜드 측은 아예 ‘유목 학교’를 기획하기로 마음 먹었다. 2주간 파리의 교수진과 시설이 해마다 다른 나라로 옮겨 진행되는 특별한 수업이다. 지난해 도쿄에 이어 올 10월에는 홍콩에서 학생들을 맞이했다. 개교 전인 지난 6월 설명회를 전후로 모든 프로그램이 마감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는데, 지난달 16일 첫 수업이 진행됐다. 그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홍콩 소호의 PMQ 건물에 문을 연 레꼴 반클리프 아펠. 파리 본교의 가구와 도구들을 모두 공수해 왔다.

2주간 문 여는 노마드 보석 학교
학교가 세워진 곳은 홍콩 소호에 있는 ‘PMQ’. 1889년 최초의 공립학교로 세워졌던 건물은 2차 대전 이후엔 결혼한 경찰들의 숙소로, 그리고 이제는 1000여 명 신진 예술가들의 둥지로 탈바꿈했다. “과거의 흔적을 지니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공간의 의미가 레꼴이 지향하는 부분과 같다”는 게 이 곳을 터로 잡은 이유다.

건물 2층에 자리한 학교에 들어섰을 때 단지 2주 수업을 위해 임시로 만든 공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리셉션의 쇼파·테이블 등 가구는 물론이고 수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파리에서 공수해 똑같이 꾸몄기 때문이었다. 실습하는 학생들이 입는 하얀 가운, 리셉션 한쪽을 차지한 서가의 책들 역시 파리 본교의 것 그대로였다. 하드웨어가 이 정도이니 교수진이 파리에서 날아오는 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실제 브랜드 공방에서 일하는 보석 장인 외에도 미술 고고학자, 보석학자, 시계 역사가 등으로 구성된 교수진 13명은 20여 년 이상 한 분야에서 몸담은 전문가라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수업은 크게 예술사·원석의 세계·장인 정신의 세 가지 카테고리 아래 카테고리 별로 세부 과목이 정해졌다. 예술사의 경우 ‘반클리프 아펠의 세계로 입문하기’ ‘스토리와 영감’ ‘부적 주얼리 이야기’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렇게 모두 10개 과목이 개설돼 2주간 69번의 수업이 진행됐다. 파리 레꼴에 비해 과목 수는 두 개 줄었다.

‘스토리와 영감’이 주얼리의 원산지 환경과 천재성을 발휘했던 주얼러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이라면, ‘다이아몬드 첫 번째 단계, 역사의 시작’(‘원석의 세계’ 카테고리) 수업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다이아몬드 관련 전설부터 시작해 어떻게 프로포즈의 상징이 됐나 등을 배우는 시간. 또 ‘탐험과 제작’(‘장인 정신’ 카테고리)에서는 장인의 지도 하에 스케치, 컬러링, 납땜을 거쳐 주얼리 모형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반클리프 아펠의 실제 제작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특히 인기가 높다.

‘장인 정신’ 관련 수업에선 실제 브랜드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공방 도구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스케치부터 컬러링, 모형 제작까지 경험할 수 있다.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주얼리를 만들다
보석에 문외한이어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일반인들이 보석의 가치를 발견하는 안목을 기르는 기회”라는 레꼴의 성격을 알고서도 은근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안목’을 길러야 한다면 실습보다는 이론이 먼저일 터. ‘탈리스만(부적) 주얼리 이야기’라는 수업에 들어갔다.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는 탈리스만 주얼리에 대해 심도 깊은 이해를 돕는 수업이었다.

‘원석의 세계’ 관련 수업에선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탄생의 기원과 의미, 감정법 등을 배울 수 있다.

12명이 모인 작은 교실. 예술 역사학자인 남녀 교수가 번갈아 진행하는 수업은 영화 영상과 함께 시작됐다. 고전 영화부터 최신 할리우드 작품까지, 주요 순간마다 보석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이어졌다. 화면이 꺼지자 여교수인 기스렝 오크레만이 질문을 던졌다. “보석이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그는 사랑·행복·성공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했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은 그 상징을 대자연에서 찾아나섰다고 했다. “모란은 중국에서 새로운 탄생이나 결혼을 의미합니다, 벚꽃은 일본에서 기쁨의 표현이죠. 네잎 클로버가 행운을 상징한다는 건 다들 아실테고…. 잠자리는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나타내죠. 박쥐는 어떨까요? 역설적이지만 다섯 마리 박쥐는 행복이 충만한 상태를 상징한답니다.” 이어 전갈·나비·거북·개구리·코끼리가 하나씩 열거됐는데, 그때마다 방대한 영상자료가 스크린을 메웠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수업은 흐름을 탔다. 자연에 이어 인간이 만들어 낸 수호의 상징물이 소개됐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말굽, 충성을 의미하는 손바닥, 영원함의 수레바퀴 등이 예로 등장했다. 특히 고대 수마니안 글자나 아라비아 숫자는 대표적인 ‘상상적 역량’에 속했다. “5는 완벽함을 뜻해요. 다섯 손가락·발가락뿐 아니라 인간의 몸 자체가 다섯 부분이잖아요.”

남자 교수인 이네지타 가이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상징물에 이어 ‘돌’의 역사로 운을 뗐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던 인간이 다음으로 땅 속을 보게 됐죠. 그것이 바로 원석입니다.” 익히 알고 있던 탄생석에서 시작된 돌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인간이 돌을 깎고 새긴다는 행위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정교하면 할수록 인간이 스스로 지닌 힘 이상의 것을 욕망함을 나타내죠. 비취 반지 안에 이름을 써 넣는 것만으로도 강력하다는 상징이 됩니다.”

신화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조금 지루해진다 싶을 때쯤, 자신만의 탈리스만 주얼리를 디자인해 보는 시간이 시작됐다. 종이와 색연필을 이용해 배운 것을 ‘복습’해 보는 시간이었다. 완성된 뒤에는 각자 만든 디자인의 의미를 설명했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해골과 십자가, 손바닥처럼 각 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기호와 상징을 살펴보고, 세계의 주요 보석 브랜드·수집가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다. 잘 버텨낼까 싶던 4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교실 문을 나서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걸이·귀고리·브로치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기에 자신있게 기술 공개
레꼴 반클리프 아펠은 하이주얼리 메종 중 유일하게 운영되는 ‘학교’다. 홍콩 개교를 앞두고 지난 6월 열린 설명회에서 CEO인 니콜라 보스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수’ 혹은 ‘교육’이라는 레꼴의 의미를 덧붙였다. 언뜻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제품을 파는 브랜드 입장에서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게 과연 이득일까 싶어서였다. 이 궁금증은 레꼴 반클리프 아펠의 마리 발라네 들롬 학장의 긴 설명으로 해소됐다.

“우리의 기술은 레시피가 아닙니다. 브랜드에서 미스터리 세팅(금속과의 접지가 보이지 않게 보석을 세팅하는 기술)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9명의 장인이죠. 1933년 특허를 받은 기술인데 이걸 아무리 설명한들 쉽게 따라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거의 불가능한지 알게 될 뿐이죠. 전수하는 건 테크닉이 아니라 보석의 의미와 문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는 “보석은 쇼윈도 너머가 아닌 역사의 일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개인의, 가족의, 시대의 일부분으로 흘러간다는 얘기였다. “지금의 주얼리 세계는 호사로움만 강조하면서 너무 협소해졌어요. 더 큰 보석의 세계가 열리려면 이 의미를 놓쳐선 안 돼요.”

홍콩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반클리프 아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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