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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와 악기 국적은 달라도 음악은 통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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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30면

다음 세 문구를 소리 내 읽어보자. ‘꼴뀌뽀크로를 위한 하라위’ ‘친차의 차랑고’ ‘까참빠’. 왠지 낯선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된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28일 예술의전당

첫 말은 잉카 문명권의 언어다. 꼴뀌뽀크로는 은(銀)으로 된 우물이란 뜻이며, 하라위는 플루트 비슷한 전통 악기다. 둘째 문구는 페루에서 왔다. 친차는 도시 이름, 차랑고는 이 지역의 기타류 악기다. 마지막으로 까참빠는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이 전투를 위해 추던 춤이다. 작곡가인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는 위의 세 문구를 제목으로 곡을 만들었다. 전체 제목은 ‘안치노의 리듬’이다. 여기서 또 한 번 어려움을 만난다. ‘안치노(Anchnos)’는 또 뭔가. 안데스 주민(Andino)과 중국인(Chino)의 합성어다. 이쯤 되면 머리가 아프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무대가 바로 이랬다. 프랭크의 작품은 이날 연주곡 중 하나였다.

‘실크로드 앙상블’은 1998년 첼리스트 요요마가 만든 단체. 20개국 음악가를 모았다. 각 나라의 음악ㆍ악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합해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연주한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국적만 따져도 한국ㆍ캐나다ㆍ미국ㆍ러시아ㆍ싱가포르ㆍ인도ㆍ일본ㆍ중국 등이다. 요요마는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이다. 이 정보를 모아 ‘요요마와 실크로드’의 무대를 상상해보자. 각 나라의 흥겨운 전통 음악이 흐르는 이국적 무대? 생전에 가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같은 음악? 여행지에서 만나는 힐링 같은 경험?

예상과 다르다. 이 공연은 맨 처음 제시한 세 문구처럼 쉽지 않았다. 청중은 음악과 악기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다. 첫 곡 ‘실크로드 모음곡’은 요요마의 조용한 첼로 소리로 시작했다. 터키의 민속 음악 선율이다. 이를 곧 중국의 비파가 받았다. 중국에서 3세기부터 썼던 비파는 빠르고 기교적인 음악을 소화했고, 소리에 힘이 있었다. 이어 기다란 대나무 통을 세로로 부는 악기가 등장했다. 한국의 대금이나 퉁소 비슷했지만 더 크고 투박했다. 일본의 사쿠하치라는 악기다. 이처럼 악기와 음악에 대한 궁금증은 공연 내내 일어났다. 중동에서 주로 연주되는 포도주잔 모양의 북인 다르부카,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북인 프레임 드럼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요요마는 두 곡이 끝난 후 마이크를 잡고 곡 설명을 했다. 처음 보는 악기와 낯선 음악에 대한 궁금증은 이때 풀렸다. 새로운 문화를 궁금해 하고, 답을 얻으면서 그 문화에 가까워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연주자들은 종종 다른 나라의 선율을 해석해야 했다. 장구 연주자인 김동원은 뱃노래 선율을 가지고 실크로드 앙상블 전원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 선율을 각 나라 악기가 연주했다. 같은 멜로디인데 연주자마다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랐다. 저들에게는 한국의 음악과 언어가 어떻게 들릴 것인가. 서로의 음악을 바꿔보는 연주가 거울처럼 각 나라 문화를 비췄다.

그래서 이 무대는 각 나라 연주자들이 모인 화합의 자리 이상이었다. 요요마는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부시맨 연구로 유명한 어빈 드보어 교수의 제자다. 요요마는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음악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곧 이어 “한국 전쟁을 예로 들어보자”고 했다. 이 전쟁을 겪지 않았어도 처참함과 비인간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백제와 일본의 칼 모양을 비교해봤다고도 했다. 이날 연주된 모든 곡은 현대음악이다. 많은 곡이 조성을 벗어나 있었고, 음악의 진행은 서양 고전 음악에 익숙한 청중에게는 낯설었다. 또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를 제외하면 모르는 악기 투성이었다. 음악이 아름답거나 듣기 편해서 즐길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무렵엔 자신감이 생겼다.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은 어떤 음조로 노래했는지, 라오족의 전통 관악기의 음색은 얼마나 투명한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네이버ㆍ유튜브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다.

“내 가장 큰 관심은 음악보다도 사람”이라고 했던 인류학도 요요마의 ‘연구결과 발표회’인 셈이다. 따라서 음악회인데 공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더라도 꼭 손해 본 건 아니다.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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