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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잡고도 선고 미뤄 … 헌재 “부작용 막기 위한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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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04면

2012년 2월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사건이 접수됐다. 인구편차 상하 50%를 기준으로 정해진 공직선거법 25조 2항 별표1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구역표’가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기 조절 논란 헌재 결정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는 1988년 헌재가 설립된 뒤 이미 두 차례나 판단한 사안이었다. 95년 헌재는 인구편차가 네 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고, 2001년에는 이를 세 배로 줄였다. 다만 투표 가치의 등가성 원칙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론 인구편차를 두 배 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012년 말 헌재 연구관실은 해당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인구편차를 두 배 이내로 줄이고 2001년과 마찬가지로 헌법불합치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그해 취임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주심을 맡았다. 몇 차례의 평의에서 다수의견은 윤곽이 잡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연구관실 의견에 대체로 동의했다고 한다. 헌재법상 사건이 접수되면 180일 이내에 선고를 내려야 한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지난달 30일 헌재는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기존 선거구를 새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에 정치권은 요동쳤지만 법조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된 결론이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수의견의 윤곽을 잡고도 2년 가까이 결정을 미룬 것을 놓고 헌재가 위헌판단을 함에 있어 정치적으로 시기를 조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11년 말 공직선거법의 인터넷상 선거운동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기를 피해 결정을 공개하는 시기를 조절했다는 의미다.

헌재 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재가 정치적 중립성 비판을 피하거나, 혹은 헌재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대략의 결론을 내려놓고도 공개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헌재가 중요한 결정의 공개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일까. 이에 대해 법조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헌법상 유일한 헌법재판기관으로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공개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헌재 결정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적당한 공개 시기를 검토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성격상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만약 선거를 바로 앞두고 이번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선거에 직접 영향을 주거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도 “정치적으로 공개 시기를 조절한다기보다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데드라인’을 정할 순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험상 결론을 내놓고 공개를 미룬 적은 없었고, 사회적 파장이나 의도하지 않은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어느 시점까지는 주문과 반대의견을 모두 작성하자고 협의한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현·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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