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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이 있었기에 동서양 철학 잇는 가교가 생겼지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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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12면

청송은 장수했다. 99세로 별세했다. 그는 소식(小食)했고 산책을 즐겼다.

한국 철학의 대부 중 한 분은 청송(聽松) 고형곤(高亨坤·1906~2004)이다.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청송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 한국철학회 초대 회장, 제6대 국회의원으로 일했다. 고건 전 총리의 부친이기도 하다. 최근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이 출간됐다. 저자인 소광희(蘇光熙) 서울대 명예교수는 청송의 애제자·수제자다. 두 분은 엄격한 사제지간이면서도 아무런 허물없는 ‘술친구’였다.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소 교수는 한국하이데거학회 창립 회장이기도 하다. 소 교수를 만나 청송의 삶과 사상에 대해 들었다.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 쓴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운주사)의 표지

-청송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완전한 자유인이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았다.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법이 없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아주 다정다감한 분으로 권위를 내세우고 그럴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천생(天生)이 철학자였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두 분 계셨다. 박종홍(1903~76) 선생님과 고형곤 선생님 두 분인데, 박 선생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스승이었다면 고 선생님은 전형적인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박종홍 선생님이 더 잘 알려졌다.
“교과서를 쓰신 것도 한 이유다. 고 선생님은 유명해지는 거나 뭐 그런 거에는 일절 관심이 없고 ‘명저 한 권만 남기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게 소원이셨다. 소원을 이뤘다. 『선(禪)의 세계』를 출간했다.”

-청송은 천재였나?
“초등학교부터 이리농림학교 12년 과정을 5~6년에 다했다. 그러고선 경성제대 예과에 들어갔으니 천재라고 할 만했다.”

-청송은 철저한 ‘오늘’주의자였는데.
“그의 입장은 세상은 몽땅 절대 현재라는 것이다. 거기서 현실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이 나온다. 청송은 현실을 절대적으로 긍정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비관하거나, 남을 원망하거나 하는 게 절대 없었다. 또 그래서 ‘나 죽거든 묘에 가서 묻기 전에 한판 신나게 놀아라’라고 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는가.
“미래는 이 양반에게 의미가 없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거지··· 미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송의 사상에 영향을 준, 불교 자체가 차생(次生)을 생각하지 않는다. 천당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인도의 힌두교인데, 그 영향을 받아서 불교에서 포교의 방편상 쓰는 거다. 불교 자체에는 내세가 없다. 나도 공(空) 너도 공, 객관적인 세계도 공인데 무슨 내세가 있겠는가.”

-입버릇처럼 말한 지론 같은 게 있었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고 있으면 불러내 술을 잘 사주셨다. 통술집에서 막걸리나 마시지 고급 술도 안 먹었다.”

-한창 연구하실 때 술로 저녁을 대신했다는데.
“청송은 저혈압이어서 술을 드셔야 했다. 말년까지 (아들인) 고건이 보고 맥주하고 양주를 대게 했다. 캔맥주에 양주 잔 반 컵 정도를 따라서 드셨다.”

-술버릇 같은 것도 있으셨는지. 주량은?
“전혀 없었다. 얼마나 깔끔한 분인데··· 주량을 가늠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추태 보인 적이 없었다. 택시를 태워드리려고 해도 절대로 안 타고 버스를 타고 갔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사모님이 싫어하지 않으셨는지.
“그 양반은 그런 것도 안 가렸다. ‘싫어하면 싫어하겠지···’ 하는 식이다. 말년에 두 분만 사실 때 갔더니 사모님이 ‘지금 생각하면 바람 피우고 뭐 그런다고 아웅다웅 불평하고 살 때가 좋았어’ 하셨다.”

-‘완전범죄형’이 아니라서 많이 들키신 것 같다.
“숨기고 덮어놓는 그런 게 없이 홀라당 까놓고 사신 분이다. 오죽하면 고건이한테도 ‘다른 건 다 좋은데, 술 너무 많이 먹는다는 소문은 나지 않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청송과 고건 전 총리의 사이는?
“아주 좋았다. 자식 사랑이 대단했다.”

-야당 국회의원 하다가 그만둔 이유는?
“해위 윤보선을 모시고 초선인데도 사무총장을 했다. 선명 야당의 리더가 됐다. 자연히 아들들이 탄압을 받았다. 큰아들은 30대에 상공부 3국장을 거친 수재였는데 내쫓겼다. 고건이는 행정고시 패스하고 발령을 받았는데 보직을 안 줬다. 자식들까지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치를 그만둔 거다.”

-요즘 기준으로는 강의가 부실했다.
“요새 같으면 행정소송거리였다.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법은 술자리에서 배웠다.”

-그때는 교수님들이 다 그랬는지.
“엉망이었다. 지금은 ‘너무’ 질서가 잡혀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대개 자습했다. 저도 2학년 때 칸트를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이거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실천이성비판』을 가지고 시골 산 속으로 들어갔다. 한 여름방학을 죽어라 혼자 읽었다. 원서 강독 능력도 생기고 칸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선생님들께 배운 게 거의 없다. 지금도 사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선생한테 배우는 게 아니다.”

-한국 현대 철학사에서 청송의 업적은?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에 가교를 놓은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선불교 철학을 한데 배치한 거다. 청송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에 나오는 ‘존재 현존성’과 선불교의 적조’(寂照·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 바르게 관찰함)가 노리는 점이 같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선의 존재론적 구명’에 성공한 거다. 대단한 업적이다.”

-세계 철학계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됐는지.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다. 선불교와 하이데거, 후설을 모두 알아야 이해가 가능한 저작이다.”

-독일 철학과 선불교를 다룬 비교철학의 성과라 할 수 있는지.
“비교철학이라고도 할 수 없다. 비교철학은 이쪽과 저쪽을 비교하는 것인데··· 청송이 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양쪽을 자신의 사유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책의 결론은 무엇인가.
“하이데거와 선불교는 ‘현실을 절대적으로 긍정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하이데거의 사상은 역사적인 관점에 서 있고, 선은 역사성은 전혀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철학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급·중급 책은 많으나 고급으로 가는 사다리 구실을 하는 책은 많지 않다.
“철학과 다른 학문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1학년에 이것, 2학년에는 저것 하는 식으로 단계별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무조건 뛰어들어봐야 한다. 참고서를 보면 안 된다. 참고서를 보면 참고서 수준에서 헤매게 된다. 이것저것 주워 읽으면 안 된다. 대담하게 원전(原典)부터 봐야 된다. 읽으면서 사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책에 빠져버리면, 거기에서 자기 사유가 무르익으며 형성된다.”

-철학을 늦게 시작해도 되는가.
“물론이다. 얼마나 본인이 집중적으로 열중하느냐가 중요하다. 몇 해 동안 집중하는 가운데 방법론과 그 정신을 익혀가지고 자신이 응용도 해보고 그러는 게 학문이다.”

-철학의 효용은?
“철학에는 효용이 없다. 철학은 각자에게 나름의 사유와 세계관을 선사할 뿐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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