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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전통미·IT 접목해 우리 문화 알리려 힘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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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893년 조선은 시카고 엑스포장에 여덟 칸짜리 기와집을 지었다. 엑스포 사상 첫 한국관이었다. 그로부터 112년. 우리나라 전시관이 엑스포 사상 처음으로 디자인상을 받는다. 현재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열리고 있는 '2005 아이치 엑스포'에서다. 125개 참가국 중 최고상인 금상이다. 은상은 스페인, 동상은 영국에 돌아갔다.

9월 25일 엑스포 폐막일에 시상대에 올라갈 이는 설계.감리를 한 김준기(48) CNS디자인연구소장.

"일제시대의 한 민속학자는 우리의 미를 고졸하고 처절한 비애미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이들이 있어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같은 시기 영국인 지리학자는 뚝섬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백 가지 꽃이 핀 듯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그런 풍부한 색감을 보여줘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전시공간을 다섯 색깔(청.적.황.흑.백)로 표현했다. 붉은 색만 해도 3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색채감을 선보였다. 여기에다 앞선 정보기술(IT)로 우리의 문화를 전달토록 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스크린을 보면 그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고, 화면 속의 그에게 나비 몇 마리가 날아와 앉으면 그가 점차 나무로 변해가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수묵화가 되는 식이다.

그는 또 후지산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목판화와 정선의 산수화를 함께 보여주는 전략도 구사했다. "너희에게 이러저러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도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야 친근감을 갖고 우리 것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선지 한국관은 현재 인기몰이 중이라고 했다.

"상은 받았지만 우리의 공간 디자인이 선진국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잠깐 동계훈련했다고 모두가 시속 150㎞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전문가들이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쓴소리도 마다 않는 그는 홍대 공업디자인과를 나왔으며 화장품 회사에서 3년 여 일하다 뒤늦게 공간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시작으로 99년 하남환경엑스포 주제관, 2000년 하노버 엑스포 한국관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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