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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본 심의 까다로와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동안 조금 풀어졌는가 했던 영화검열이 최근 들어 다시 강화되어 영화계에 비상이 걸렸다. 영화는 우선 시나리오 신고(「신고」로 되어있으나 바로 검열이다)를 하고 이 시나리오로 제작한 필름을 보사로 또 한차례 검열을 받는다.
이런 2중의 검열 가운데 더욱 까다롭게 된 것이 시나리오 심의다.
시나리오심의가 부쩍 엄격해져 삭제·수정·반려의 사태가 빚어지자 시나리오작가·감독·영화평론가들이 이의 시정을 당국에 건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나리오 분과위원회는 이런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각 영화사에 공문을 돌려 자료협조를 요청했고, 제작자협회에서도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시나리오분과위원회는 공문에서 시나리오의 지나친 심의는 『전 영화인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보고 강력히 대응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검열이라는 과정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다. 검열이 도덕적인 기준만을 강조, 예술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불만이다. 즉 검열이 영화에서 도덕성만을 강조, 비도덕적이거나 반도덕적인 내용이 아니면 그것이 곧 영화예술의 당위성처럼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같은 검열이라도 프랑스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심사해서 잘된 것에 보조를 하기 위한 검열이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는 판정에 대한 재량권의 폭이 넓어 근래에는 일관성을 잃고 「코걸이 귀걸이」식의 검열로 영화인들의 불평을 사고 있다. 작품전체의 주제파악을 무시하고 부분묘사에만 치중, 삭제·수정 등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사의 경우엔 검열위원이 각계각층의 다수가 참여, 충분한 토의과정이 뒤따르지만 시나리오의 경우엔 고작 한 두 사람이 심의하고 있어 문제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또 검열담당자들이 안목이 있어 작품의 의도나 톤을 고려하고 있지만 검열을 통과하고 난 뒤에 생길지 모를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어 소신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있다.
원로 시나리오작가 최금동씨는 『우리관객도 면역이 강해져 한층 쇼킹하고 깊이 있는 테마를 원하고 묘사도 리얼한 오락성을 갈구하게 된 것이 현실』이라며 『운영의 묘를 살려야지 어떤 한 조항·기준에만 얽매이다 보면 전체를 망치는 수가 있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정용탁 교수(한양대)는 『심의가 형집행의 양상을 띠는 단죄의 장소가 아니라, 표현과 창조의 자유수호와 미풍양속·도덕·윤리의·보호라는 대립되는 두 가지 항목의 타협이 완만히 이루어지고 자유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이 그것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발전되어야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계 자체에도 문재가 없는것은 아니다. 일부에선 『검열이 다소 완화됐으면 이를 고맙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숨통을 터야지 한 두편 영화의 흥행에만 집착해 모처럼의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려 한다』 는 얘기다.
이밖에 『예술을 빙자해 유치하고 낯뜨거운 장면으로만 이어진 작품을 버젓이 들고 오는 업자들의 후안무치엔 무슨 대화가 있겠느냐』는 당국의 공증도 당연한 노릇이다.
아뭏든 영화인들은 정부시책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 건전하게 받아들여 자숙과 책임 있는 창작활동에 임해야 할 것이란 견해와 함께 영화산업진흥이란 차원과 세계적인 안목으로 검열의 기준을 삼아야 한다는 데에도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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