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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간판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만큼 각종간판이 어지럽게 걸려있는 도시는 아마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한 업소에서 간판을 크게 해붙이면 이에 뒤질세라 다른업소가 더큰 간판을 내건다.
서울의 웬만한 건물은 온통 간판으로 뭍혀버리고 말았다.
서울을 처음으로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서울이 아무런 운치도 없는 도시라고 말한다.
요란하고 무질서하게 나붙은 간판은 그들의 눈을 피로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원이나 녹지는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서 눈에 띄는것은 온통 간판뿐이니 그럴수 밖에 없다.
간판의 공해는 비단 시민들의 시야를 어지럽히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투르게 달아놓은 간판, 건물보다 더큰 간만은 태풍이라도 불면 시민의 안전통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실 간판이 떨어져 그 밑을 지나던 행인들이 다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뿐만아니라 가뜩이나 좁은 보도에까지 나온 입간판은 길을 가는데 적쟎은 지장을 준다. 시민공유의 공간이 간판에 의해 침해당해온 일은 시정되어야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서울시가 「간판공해」에 대해 메스를 가하기로 한것은 그런 뜻에서 뒤늦게나마 잘한 일이다.
수술의 직접적인 계기는 86년의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때문이지만 그런국제적행사가 없다해도 도시미관을 해치는 간판의 난립은 규제했어야했다. 정비대상이된 간판은 60만6천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30만6천개에 이른다. 서울시가 확정한 정비계획을 보면 건물에 부착된 간판에서부터 현수막, 차량이용광고물, 전주부착 광고물까지 모든 광고물을 대상으로 하고있다. 우선 전체간판의 숫자와 크기를 대폭 줄이고 간판 구조물의 재료, 자체, 색깔등을 건물및 주변 환경에 맞춰 개량해 나간다는 것이다.
광고물정비를 위한 이 개획을 추진하려면 물론 법적장치도 마련되어야한다. 현행 광고등 단속법에도 광고물표시의 금지, 또는 제한장소등이 명문화되어있긴 하지만 임의로 규정을 하고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광고물단속법과 시행규칙을 고쳐 이법이 제구실을 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광고와 선전의 시대라고도한다.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 남이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아무런 일도 못한다는 말도 그럴듯하다.
자신의 점포나 상품을 선전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더많이 팔기 위해서는 간판도 눈에 띄게 내걸어야하고 광고도 자주 많이 해야한다. 그러나 간판이 크면 클수록 광고효과가 크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간판을 크게 해서 고객을 끌려는 방식은 이젠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인식이 이 기회에 심어져야겠다.
서울만큼 천혜의 자연조건이 좋은 도시는 쉽게 찾기 어렵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등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있는 그 사이를 한강이 관류하는 아름다운 서울을 시민들의 무신경과몰지각으로 멋없는 도시로 방치하고있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어지러운 광고물정비를 계기로 서울을 아름다운 도시로 가꾸기 위한 범시민적인 노력이 기울여져야겠다. 주변의 산하를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존해야함은 말할것도 없고 건물 하나집 하나라도 전체적인 도시미관을 생각해서 지어야할 것이다. 가령 일정 평수의 건물에는 몇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도록 의무화한다든지, 큰건물을 지을때 일정액의 미관비를 계상하도록 권장하는 제도는 적극이행돼야한다.
서울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꾼 열매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일은 서울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성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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