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 이제는] 3. '일단 팔고 보자' 보험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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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사는 박모(43)씨는 얼마 전 친분 있는 보험 설계사에게 5년짜리 적금보험에 월 130만원씩 넣겠다고 했다. 그는 청약서에 서명만 하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설계사의 말을 믿고 빈 청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웬걸. 설계사는 박씨가 요청한 적금 보험 대신 본인의 수당이 많이 나오는 보장성 보험에 가입해 놓았다. 그것도 자신의 다음달 실적을 고려해 두 달에 걸쳐 80만원과 50만원짜리 보험으로 나눠 가입한 것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설계사는 청약서.영수증.보험증권을 청약 철회 기간이 지나서야 건네 박씨는 해지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의사 김모(40)씨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 그는 올 초 기존의 보험을 모두 해약하고 한 보험사의 변액유니버설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설계사가 이 보험을 투신사의 펀드인 것처럼 설명하면서 갈아 타라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설계사의 설명을 듣고 보험 가입 후 해약한다고 해도 약간의 수수료만 내면 원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는 가입 후 얼마 되지 않아 해약하면 납입보험료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됐다. 현재 그는 보험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보험 판매가 판을 치고 있다. 보험 설계사의 부실 모집이 여전한 탓이다.

상품 특징을 부풀려 설명하면서 가입을 권유하는가 하면 계약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빠뜨리고 설명하기 일쑤다.

일부 설계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변액보험을 팔 때 연 4.25%나 9.5%의 수익률로 계산한 보험금을 제시하며 확정금리 상품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변액보험은 소비자가 낸 보험료의 일부를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해 펀드처럼 운용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투자 수익률에 따라 보험금 차이가 나고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부실 모집은 가입자와 보험사 간 분쟁을 야기하고 각종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이 처리한 보험 민원 가운데 모집인 관련 민원은 2003년 1824건에서 2004년엔 2975건으로 63%나 급증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기존 보험 설계사들이 가정주부로 1~2개월 교육받은 뒤 영업에 투입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고 연고 판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입사 후 1년 내에 절반 이상이 그만둬 보험사들은 퇴직한 설계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설계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과장된 상품 소개를 한 설계사에 대해선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보험 설계사가 안내장 없이 말로만 과장되게 상품을 설명할 경우 향후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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