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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입 힘들게 요건 엄격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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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10월부터 도시인들도 밭과 논 등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나 이들의 농지 구입이 사실상 쉽지 않게 됐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구입 요건과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농지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해 10월부터 도시인처럼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도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3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비(非)농업인도 농지를 산 뒤 농민에게 임대를 줄 수 있으나, 농지를 구입할 때 엄격한 요건이 적용돼 사실상 도시인들의 농지 구입은 제한될 전망이다. 정부가 애초 농지법을 바꾸기로 한 것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적용하다 보니 농지를 팔려는 농민은 있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제한돼 농지 거래가 안 됐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도시인들도 농지를 사게 하면 한계 농민들이 농지를 팔아 농촌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도시인들은 취득한 농지를 농원으로 만들거나 경쟁력 있는 농민에게 빌려줘 농업경영의 규모화도 이룰 수 있으리란 효과도 기대했다. 그러나 도시민들이 농지를 자유롭게 사면 땅투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해 정부는 개정안에 농지 취득을 위한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기로 하고 국회 심의를 받아 이번에 통과시켰다.

◆ 까다로운 농지 취득 요건=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하려면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구입한 농지를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농민에게 임대해야 한다. 이때 농지취득 요건이 까다롭다.

일단 비농업인이 토지거래허가구역(전 농지의 14% 정도) 안의 농지를 사려면 해당 지역에 전 가족이 6개월간 거주해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곳의 농지를 매입하려면 영농계획서를 작성해 읍.면장에게서 농지취득자격 증명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취득한 농지는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전문농민에게 5년 이상 임대해야 한다. 만약 임대하지 않으면 농지를 되팔아야 한다.

농업기반공사는 도시지역 농지나 개발예정 지역 농지는 위탁받지 않는다. 땅투기를 막기 위해서다. 때문에 이런 지역의 농지를 산 사람은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되팔아야 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도시민이 농지를 쉽게 살 수 있도록 허용하면 땅투기가 발생할 수 있어 올 초 강화한 토지거래허가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요건 때문에 외부인이 농지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비토지거래허가구역의 일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 농업기반공사가 농지 매입=이렇게 외부인의 농지 취득 요건을 강화하면 사실상 농지거래 규제를 푼다는 애초의 입법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농림부는 농민들이 팔려고 내놓은 농지를 농업기반공사가 살 수 있도록 농업기반공사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농림부는 농업기반공사가 농지를 매입한 뒤 그 농지를 해당 농민에게 빌려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농민이 되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의 농업기반공사법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농민은 농지를 농업기반공사에 팔아 빚을 청산한 뒤 그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소득이 쌓이면 해당 농지를 다시 살 수 있게 된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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