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적은 곳 1표가 3표 효력, 평등선거 위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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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0일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앞서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박 소장은 ‘인구편차 2대 1’ 기준을 제시한 다수의견에 맞서 이정미·서기석 재판관과 함께 “기존대로 ‘3대 1’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밝혔다. [신인섭 기자]

“더 이상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두 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30일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조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에서 내린 결론이다. 형식적으로는 11개 선거구에 대해 8건의 위헌확인 청구가 제기됐고 헌재는 이 중 6개 선거구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19대 총선에 인구편차 상한 기준 ‘3대 1’을 적용하는 게 옳으냐에 대한 판단이었다.

 헌재는 이미 2001년 인구편차를 ‘4대 1’까지 용인했던 당시 기준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면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로 ‘2대 1’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장 바꿀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3대 1’까지는 인정한다는 절충안을 내놨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는 동안 불만이 커졌고, 특히 충청권 인구가 호남 인구를 넘어서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자 기준을 수정한 것이다.

 과거 결정이나 이번 결정이나 헌재의 판단 근거에는 큰 차이가 없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한 것은 ‘표의 등가성’. 투표구에 상관없이 한 표의 가치가 같은 것이 이상적이지만 행정구역이나 생활권, 지방세 등의 문제 때문에 일정한 편차는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기존처럼 ‘3대 1’까지 허용하면 인구가 적은 지역구의 한 표는 많은 지역구의 3표와 같은 효력을 갖게 됨으로써 평등선거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인구수가 적은 곳에서 당선된 의원보다 더 많은 표를 받고도 낙선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제시됐다. 지방자치제도가 이미 정착된 만큼 지역대표성 문제는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다는 점도 기준을 바꾸는 데 한몫했다. 헌재는 “영·호남 지역이 수도권과 충청권보다 인구에 비해 의원수가 지나치게 많은데 이는 지역정당 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도 2대 1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연방하원 선거에서 편차를 0에 가깝게 만들도록 노력한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위헌으로 간주된다. 독일은 인구수 상하 편차의 최대 허용치가 25%이며, 일본은 인구편차 2.3대 1인 선거구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서기석 재판관 등 3명은 “평등선거는 역사·사회·정치적 상황 등의 특수성이 반영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인구 외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도농 간 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고,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지역 대표로 인식하는 사정도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이상 국회는 다음 선거 전까지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한다. 의원 수를 늘리지 않을 경우 인구가 적은 영·호남과 강원도에서 10여 개의 의석이 줄어드는 반면 수도권은 20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의원들 반발 때문에 법이 고쳐지지 않는 상황은 없을 것으로 헌재는 내다봤다. 헌재 관계자는 “그런 상황이 오면 헌재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복현 호원대 법학부(헌법학) 교수는 “만일 선거구 문제를 고치지 않아 근거법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다면 당연히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돼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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