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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의약분업 평가도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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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정수 정책사회부 기자

"의약분업을 하더라도 돈이 더 들지는 않는다." 의약분업 실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1999년 말 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비용은 더 들어가지 않고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의약분업을 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제도 시행 전의 두 배로 올랐고, 의약분업과 관련한 건강보험의 지출도 19조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정부가 장담했던 것과 달리 의약분업으로 국민의 편익이 증진됐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도 찾기 어렵다. 정부가 국민을 대놓고 속인 셈이 돼버린 것이다.

감사원은 의약분업이 시작된 직후인 2001년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보건 당국이 취한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부가 2002년과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중간 평가를 했지만 국민 부담 등에 대한 분석은 형식적이었다. 기자가 '의약분업, 그 후 5년'(본지 7월 1일자 5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의약분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임의조제나 담합 등 불법행위들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시민모임이 생긴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정부는 최근 제도 시행 5년을 맞아 민간인 중심의 평가를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의약분업을 시작할 당시 관여했던 공무원들이 현재 평가를 주도하는 복지부의 고위직인 데다, 평가위원 구성을 놓고도 의사.약사들이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다투고 있다.

이번 평가는 의약분업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의사.약사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국민은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진료를 거부했던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 의약분업의 보완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일반의약품의 수퍼 판매가 시행될 경우 약사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게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제대로 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김정수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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