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 포럼

부시 대통령 각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부시 대통령 각하.

당신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예수다." 당신은 기독교인입니다. 정확히는 복음주의 감리교 신자지요. 그러나 명목상 그렇다더군요. 사람들은 당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 부릅니다.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니까요. 당신의 참모 상당수도 그들이고요. 정책 또한 그 기조입니다. 특히 대외 정책에서요. 그래서 정책보다 교리 우선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당신의 신앙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근본주의는 원래 출발이 간단합니다. 곧이곧대로 믿자는 거지요. 성경에 써 있는 그대로를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지요. 자꾸 근본을 찾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끝으로 갑니다. 종교에서 양 끝은 어딘가요. 선과 악입니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눕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도 마찬가지지요.

문제는 악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근본주의의 해결책은 전쟁입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니까요. 궤멸의 대상입니다. 상대가 '악의 축'이라면 더 하겠지요. 대화와 설득은 종교적 배신일 겁니다. 전쟁은 그렇게 정당화됩니다. 결국 극단주의로 흐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르침이 있습니다. 물론 근본주의적 훈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전체를 꿰뚫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믿는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건 누구였나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지요. 율법을 어겼다는 죄명을 씌웠지요. 그들에겐 율법만이 선이었습니다. 이외의 것은 악이었지요. 이분법입니다. 그들은 선을 좇았지요. 그러나 결과는 죄였습니다. 그것이 근본주의의 함정입니다. 율법 중의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겁니다. 그날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병자를 치료해서도 안 되지요. 그런데 예수는 그것을 했습니다. 율법을 어겼지요. 알면서 그랬지요. 법보다 사랑이 중요함을 가르친 겁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악과 원수를 다루는 방법을 말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에 지는 거라 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 했습니다. 그래야 악을 이긴다 했습니다. 악은 하나님이 갚아준다 했습니다. 그러니 맡기라 했습니다.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 했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했습니다. 배고파하면 먹이라 했고 목말라하면 마시게 하라 했습니다. 그때마다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거라 했습니다. 언젠가 하늘의 진노가 바람을 보내겠지요.

스스로 원수를 갚아선 안 됩니다. 기독교인이라면요. 더더욱 성경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라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니까요. 그것은 죄입니다.

9.11 테러는 분명 악이었습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스스로 갚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습니다. 역사적 평가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따르진 않았습니다. 그래야 했다면 종교를 앞세워선 안 되지요.

북한 핵도 악입니다. 악으로 갚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특히 당신 주변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9.11의 악을 이겨냈습니까. 아직도 당신은 전쟁 중입니다. 악이 악을 부르니까요. 악순환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해 보시지요. 배고파하면 먹여 보시지요. 목마르다면 물을 주시지요. 선의 무기를 잡아보시지요. 그리고 요구하십시오. 선의 보답을 말입니다. 인민과 세계를 향해서요. 인권을 보답하고 평화를 보답하라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선순환을 엮어내시지요. 모두 이기는 선의 전쟁을 치르십시오. 그것이 보다 근본 아닐까요.

이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