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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에 오른 대영제국의 「체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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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5년전 수에즈전쟁이후 처음으로 영국함대가 출동한 5일, 외교의 주역인 「캐링턴」외상이 2명의 차관과 함께 사임함으로써 포클랜드사태가 몰고온 충격파가 영국정치의 중추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음을 보여주었다.
의외의 사태발전으로 위기에 몰린 「대처」수상은 최소한 이사태가 수습될때까지는 「캐링턴」의장과 「존·노트」국방장이 계속 집무할것을 바랐지만 의회의 분위기가 예상이상으로 호전성을 띠자 의장의 사표를 「마지못해」 수리한다고 말했다.
사표를 제출한 국방상과 외상중 외상의 사표만수리한 것은 일단 영국정부가 외교보다는 군사적 시위를 통한 압력수단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는 인상을 강조하는것 같다.
탄약이 적재되어 있음을 알리는 붉은 깃발을 게양한 이들 함정은 대서양 중심부에있는 아셴션섬에서 일단 집결하도록했던 원래 계획을 변경, 포클랜드로 직행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만큼 함대파견을 둘러싼 분위기는 급박해진 것이다. 1만2천8백km 떨어진 목적해역에 도착하는데는 2주가 걸린다.
지난3일에 열린 비상회의에서의 발언가운데 가장 통렬한 비판은 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침공을 사전에 탐지하지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미리 탐지했더라면 아르헨티나군이 침공하기전에 비밀리에 기동함대를 포클랜드근해에 사전배치함으로써 시위효과만으로 아르헨티나군의 침공을 방지하지 않았겠느냐는것이 전노동당정부의 외상을 지낸 「데이비드·오언」의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단 사태가 현재에 이른 이상 기동함대의 현장도착까지 걸리는 2주간의 시간이야말로 영국이 유혈전쟁에 휘말려들지않고 이사태를 수습할수있는 소중한 유예기간이 아닐수 없을 것같다.
기동함대는 발진했지만 현장에 도착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트」국방장은 작전명령은 함대의 항진중에 하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정부는 물론 작전을 해야할 경우 어떤 형태의 공격을 할 것인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있다. 그러나 국방참모장을 지낸 「노턴」예비역해군제독은 공격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있다.
『기동함대는 일만 포클랜드군도주위의 해역을 봉쇄하고 아르헨티나 점령군을 아르헨티나본토로부터 고립시켜야한다.
이단계의 작전이 끝나면 시한을 정해 점령군의 자진철수를 요구한다. 만약 불응하면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아르헨티나는 칠레와도 영토분쟁이 있기때문에 칠레해군에 대한 경계를 유지해야되는 필요때문에 자체의 해군력이 봉쇄작전돌파과정에서 큰피해를 입는것을 원치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시나리오는 영국해군의 절대적인 우윌성을 전제로 할때만 가능하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낡은 항공모함1척, 구축함8척, 잠수함 4척을 보유하고있어 영국함대보다 숫적으로나 기능면에서 열세다.
이 항공모함은 48년 영국이 네덜란드에 판매한 것인데 후에 아르헨티나가 네델란드로부터 구입했다. 이 항공모함은 미제 스카이호크전폭기가 18대 탑재되어있는데 공중전을 하게되면 이 스카이호크기와 영국의 해리어수직이착륙 전투기가 서로 주력이된다. 이 두 전투기중 해리어가 성능면에서 앞서지만 스카이호크는 화력이 월등히 우세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영국해군의 가장 가까운 보급기지가 7천여km 떨어진 아셴션도인데 비해 아르헨티나 본토는 포클랜드에서 6백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아래서 영국함대가 작전을 할경우 함정의 피침을 포함해서 상당한 피해를 영국은 각오하지않으면 안되고 장기소모전은어렵다.
2차대전이래 경제·외교면에서 대영제국으로서의 역할이 형편없이 평가절하되어오는 동안 무수한 좌절감을 겪어온 영국의 지도층은 이번 사태를 반드시 원상회복시켜야할 「치욕」 으로 보고있다.
의회의 비상회의에서 여야의윈들이 다같이 행정부의 실책을 비난하면서 과감한 행동을 촉구한 것은 바로 그런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다.
거기다가 포클랜드를 그대로 방치할경우 지브롤터·벨리즈·홍콩등 나머지 식민잔재도 쉽게 잃어버리게 될것이라는 실질적 계산도 깔려있는것 같다.
함대를 떠나보내는 포츠머드항구의 부두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영국국기인 유니언 재크를 흔들면서 전송했다. 그중에는 『무사히 돌아오라』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그리나 일반적으로 영국시민들사이에서는 의회에서 보인것같은 격렬한 분위기는 찾아 볼수 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철책주위에 항의하는 군중을 찾아볼수 없었다. 런던에서 전통적으로 시위장소로 이용되는 트라팔가르광장에는 젊은 남녀들이 봄볕을 즐기며 몰려있었지만 아르헨티나 사태에는 관심을보이지않았다.
한 택시운전사는 『영국인들은 조용해보이지만 전쟁이 나면 단결해서 궐기하는 성질이 있다』고 말했으나 『요즘 젊은이들은 좀 다르지않느냐?』고 물으니까 『하긴 그렇다. 나는 중년층에 대해서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신문들의 반응은 일전불사론이 지배적이지만 진보적인 가디언과 업저버지는 신중론을 호소하는 사설을 싣고 있다.
더타임즈지는 『우리모두가 포클랜드주민이다』란 제목의 사설을 싣고 『2차대전때는 폴란드국민을 위해 싸웠는데 폴란드인은 폴란드인이고 이번에는 우리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한다』는 내용의 사설을통해 무력사용을 주장했다.
그러나 가디언지는 『동기는 정당하지만 엄청난 위험이 내포돼있다』는 이유를 들어 호전무드를 억누르고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포클랜드사태를 현시점에서 정확히 예측할수는 없다. 「레이건」대통령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간의 중재역할을 맡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미국무성의 일부 견해는 당분간 외교중재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도 영국함대 출동의 대응 조치로 포클랜드의 방위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해군력이 영국에비해 열세이어서 영국과의 일전을 벌이기에는 문제가 있다. 또 영국의 입장에서는 해군작전의 병참지원의 난점이 있어 효과적인 작전이 어렵다.
두나라 모두 전쟁을 통한 사태해결에는 어려움이있으므로 영국함대가 포클랜드에 도착하기까지의 2주일간에 평화적해결방안을 모색하기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할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런던=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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