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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개헌에도 골든타임 있다" 박 대통령은 미소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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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국회에서 만난 건 13개월 만이다. 29일 오전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귀빈식당에서였다. 회동 결과 공식 브리핑에선 “개헌 얘기는 없었다”였다. 하지만 “개헌 얘기까지도 나온”(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짧지 않은 60분이었다.

 문 위원장은 회동 2시간이 지난 뒤 여수에 있는 안철수 의원 장인의 장례식장에서 일부 기자와 만났다. 그는 “개헌에 대해 길게 얘기했지만 이완구 원내대표가 공식 발표에서 빼자고 요청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소개한 대화록은 이랬다.

 ▶문 위원장=“개헌이 경제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우려를 이해하지만 경제처럼 개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박 대통령=“….”(미소만 지음)

 ▶문 위원장=“집권 3년차엔 유력 대선후보가 떠올라 개헌 논의가 힘들어진다.”

 박 대통령이 대꾸하지 않자 우윤근 원내대표가 준비해간 자료를 꺼내들었다. 개헌의 필요성과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등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러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막아 섰다.

 ▶김 대표=“개헌 얘기는 그쯤에서 끝냅시다.”

 ▶문 위원장=“30일 국회 연설에서 크게 다룰 거다. (연설 듣고) 놀라지 말라. 오늘은 예고편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문 위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농담을 건넸다.

 ▶문 위원장=“거, 김 대표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하도 개헌하자고 하니까 (중국에서) 얘기한 거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둘이 얘기가 다르면 국민 보기에 우스워진다.”

 박 대통령은 웃음을 터뜨렸다. 개헌 얘기 끝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오늘 회동에서 개헌 얘기는 없던 걸로 하자”고 제안했다.

 오전 10시50분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주로 야당의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와 관련된 부분엔 적극적으로 발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재정건전성에 대한 염려를 알고 있다. 중기 재정계획을 균형재정으로 짜서 국가 재정을 나아지게 한 뒤 다음 정부에 넘기겠다.”

 ▶문 위원장=“(대통령이) 경제 박사가 다 되셨나 생각했다. 처음도 경제, 끝도 경제다.”

 ▶박 대통령=“민간이 힘이 빠져 정부마저 나서지 않으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

 ▶문 위원장=“‘초이노믹스’라는 최경환 부총리식의 경기부양책은 우려된다. 듣기 거북하더라도 들어주기 바란다.”

 합의된 사안은 크게 세 가지다. ▶세월호법·정부조직법·유병언법 30일 처리 ▶기초생활보장법 등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 노력 ▶예산안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 등이다. 새정치연합 백재현 정책위의장은 회동이 끝난 뒤 정부조직법의 쟁점인 ‘해경 폐지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참석자들은 “공무원연금과 공공기관 개혁은 정권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며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다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서도 “환수시기를 못 박지 않은 무기한 연기는 주권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문 위원장은 회동에서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품으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된다. 들어오실 때 악수했느냐. 나가실 때라도 꼭 하시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나 유가족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 지도부 회동에 앞서 열린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30분간 모두 27번의 박수가 나왔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 해야 할 때” “더 나은 국가 살림을 만들어 다음 정부에 넘겨줄 것” 등의 대목에서 박수 소리가 컸다. 연설이 끝난 뒤 대부분의 의원이 기립해 대통령의 퇴장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와 이 원내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 새누리당 지도부, 회의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의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본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강태화·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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