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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시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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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어느 유명 영화감독이 배우들이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 영화를 만들기 힘들다고 해 문제가 됐다. 바로 반박과 사과가 이어져 사안이 수습되는 모습이지만, 이런 일을 그냥 두면 아파트 원가공개처럼 배우(연기 서비스) 원가를 공개하라는 운동으로 번질 게 걱정돼 한마디하고 싶다.

그 감독이 지적한 대로 가다 보면 곧 배우들이 지나치게 번다는 쪽으로 얘기가 흐를 것이고 결국 분위기에 떠밀려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배우들의 '공정한 소득'이 정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제작자의 소득, 다음은 감독.극장주의 소득 시비로 이어져, 모든 영화인의 소득이 일반 스태프의 낮은 소득 수준에 이를 때까지 그 불길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각 개인의 경쟁력 차이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소득체계에 선례가 있었으니 바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소득체계였다.

이거야말로 한국영화가 '재미 없는 한국영화' 시대로 되돌아가고 한국 영화계 전체가 공멸하는 길일 것이다.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소득평준화의 해악은 스크린쿼터보다 더 클 것이다. 영화인 간에 경쟁을 위축시킴으로써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한몫 챙겨 보겠다는 유인이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 몸을 던져 연기를 할 것이며, 뭐하러 애를 써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며, 무슨 떼돈을 벌겠다고 그저 그런 영화를 아까운 스크린에 올리겠는가.

유명 배우들이 고액의 개런티나 수익배분 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바탕에는 인기와 연기력이라는 인적자본이 자리 잡고 있다. 제작자들은 그 배우를 동원했을 때의 수익을 생각해, 나서서 계약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 계약 내용은 양자 간의 자율적인 거래를 통해 도달된 균형상태라는 얘기다.

배우는 연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다. 내로라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웬만한 개런티를 주기 전에는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경제학에서는 공급이 가격에 비탄력적이라고 부른다. 거액의 개런티가 아니면 출연하지 않을 몇 안 되는 유명 배우를 제작자나 감독들이 너도나도 쓰려고 하니 그 배우의 값은 높을 수밖에 없다.

배우가 돈을 챙기는 게 그렇게 배 아프다면, 인기 있는 감독으로서의 자질과 명성을 쌓거나 또는 좋은 배우를 많이 배출해 배우 공급을 늘리면 될 일이다. 그런 제작자나 유명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 출연하면 배우 본인의 연기력과 인기를 더 쌓을 수 있고, 또 유명배우로 배출되는데, 어찌 감히 배우가 콧대를 세우고 고액의 개런티나 고율의 수익배분을 요구하겠는가.

제작자든 감독이든 배우든 모든 영화계 인사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소득도 올리는 길은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채찍질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다. 각 영화인의 소득은 감독도 제작자도 배우도 아닌 관객이 결정해 줄 것이다. 이번 일과 관련해 낯 간지러웠던 일은 스크린쿼터 폐지에 앞장서 반대하던 유명 배우들이 정작 본인 개런티에 관해서는 시장원리 운운하는 것이었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