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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포클랜드군도(Falkland Islands) 를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분쟁은 제3국엔 「희한한구경거리」가 될 것같다. 영국항모 인빈시블호가 1천명의 특공대를 태우고, 남대서양으로 떠났다. 과연 대영제국이 일전도 불사할 것인지.
「R·클라인」교수의 재래식 전투력 평가에 따르면 영국은 평점 2백50점으로 세계6위에 올라있고 아르헨티나는 53점으로 세계 32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지정학적조건은 영국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포클랜드군도는 남미대륙에서 불과 4백80km 떨어졌으나 영국에선 2주일을 항해해야 도달할수 있는 거리다. 결국 영군의 출동은 무력시위를 통한 협상이 최후 카드일것 같다.
포클랜드군도는 남위52도 서경60도의 남대서양에 위치한 약 2백여개의 대소도서로 이루어졌으며 주도는 동·서포클랜드도이다. 이 섬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592년 영국선원 「존·데이비스」로 알려졌으나 첫발을 디딘 것은 1690년의 「존·스트롱」대위였다.
그는 이 섬을 상관인 포클랜드자작의 이름을 따 불렀으나 남미에선 말비나스(Malvinas)군도라 부른다.
면적이 모두 합쳐봐야 1만5천평방km밖에 안되는 이 절해의 고도가 당시로서는 관심밖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1764년 프랑스항해가 「드·부갱빌」이 동포클랜드에 정착했고 다음해 영국인도 서포클랜드에 정주했으나 이들은 곧 l770년 스페인군에 의해 쫓겨났다. 프랑스가 스페인에 섬을 판 것이다. 영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영국의 주권을 선언하는 명판만 남긴채 퇴각했다.
그이후 스페인도 내정에 휘말려 더이상 포클랜드의 영유권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섬의 영유권을 주장, 분쟁이 재연됐다. 영국은 l833년부터 총독을 임명, 아예 식민지로 편입시켰으나 아르헨티나와는 유엔, 국제사법재관소등을 ??하며 입씨름을 벌여야했다.
79년에 영국은 포클랜드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방향의 현상을 벌여오다 최근 무력강점당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무력강점 이면에는 이 해역에 수산물이 풍부하고 석유부존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나 복잡한 국내사태에서 연유된 것같기도 하다.
최근 붸노스아이레스에선 인플레와 실업에 지친 군중들이 『페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76년 이래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등 정정이 어수선해 어디에서든가 돌파구를 찾지않으면 안됐다.
결국 중공이 베트남으로부터 남사군도를 점령했듯, 무력점령으로 고지를 차지한 아르헨티나에 영국이 어떤 대응책을 쓸지 하회를 기다려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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