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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라인강의 기적」 이근량 전특파원이 파헤친 서독의 두얼굴(9)|그네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스-디트리히·겐셔」서독외상이 지난해 TV에 출연해 질문공세를 받았다.
-사회자=어릴 때의 취미를 말해 주시죠.
「겐셔」외상=예, 축구구경도 즐겼고 요리와 캠핑에도 관심이 관심이 컸지요.
-사회자=아닐 텐데요. 혹시 그네를 즐겨 타시지 않았나요.
사회자의 「그네」라는 말에「겐셔」외상은 물론이고 방청석과 TV를 보던 가정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겐셔」외상 소속의 자민당(FDP)이 제3당으로 다수당이 아니면서도 사민당(SDP)·기민당(CDU)과 번갈아 손을 잡고 집권당(연정)으로 군림해 온 것을 그네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 처럼 양대정당의 연정파트너로 장기집권 해온 자민당식「그네정치」는 국민학교의 반장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반장선거에서 2명이 동점일 경우 3위로 득표한 학생은 「그네정치」의 묘수를 부린다.
2명의 경쟁자중 한명을 지지해 주고선 푸짐한 소시지 파티에 초대받은 다음 자기자신은 자연스럽게 부반장이 된다.
자민당식 그네타기다. 제3의 득점학생이 부반장에 오를 수 있는, 이른바「소수집단을 위한 제도」는 대학사회에서도 다를바 없다.
브레멘대학의 「사회주의 학생클럽」은 최근에 실시된 학생회장선거에서 25명의 대의원중 고작 4명을 당선 시켰음에도 파트너를 잘 골라 부회장자리를 얻는뎨 성공했다. 본 대학에선 대의윈수가 3명 뿐인 「사회자유동맹클럽」이 다른 군소클럽과 연립학생회를 구성, 최대의 학생클럽을 학생회조직에서 밀어냈다.
실제로 「그네정치」의 주인공 자민당은 지난 49년 「아데나워」이래 서독에 등장한 11개 정권중 9개의 정권에 참여했다. 사민당이건 기민당이건간에 그 백중한 세력 때문에 단독집권이 어려운 허를 뚫고 그네처럼 두 정당을 오가면서 장기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민당은 약한 당세와는 달리 연립정부 안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해 왔다.
사민당과의 현 연립내각에서 외무·내무·경제·농림등 소위 계란의 노른자위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만으로도 자민당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예산심의 때는 사민당이 주장한 사회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는가 하면 한술더 떠 사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보장법의 개정을 관찰시키기도 했다.
자민당식 그네 타기는 주단위 선거에선 횡프에 가까울이 만큼 멋대로다.
주선거에서 연방정부의 연정파트너가 아닌 정당과 손을 잡기 일쑤다. 80년4월의 자를란트주 선거에서 연정공약을 밝히지 않았던 자민당이 선거가 끝난 후 주안의 최대세력이며 연방정부의 파트너인 사민당을 제치고 기민당과 손을 잡아버렸다.
오는 9월로 예정된 함부르크 시의회선거와 내년도의 총선거를 앞둔 자민당이 아직 것 연정공약을 내놓지 않아 사민당과 기민당이 애를 태우고 있다.
어느 정당이건 단독집권이 불가능한 서독에서 양대당인 사민당과 기민당이 자민당을 짝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현실이다. 시의회의원이상의 신분인 자민당인사가 생일을 맞으면 이들 두 정당 관계자들은 다투어 축전과 축하케이크를 보내준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파티에서 제3당인 자민당인사주변에 양대당인 사민당과 기민당 사람들이 몰리는 진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민당과 밀월관계인 사민당으로서는 자민당의「이혼선언」이 항상 두렵고, 기민당으로선 앞으로의 집권을 향해 자민당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정안에서 마찰이 생기면 자민당은 기민당과 제휴해 사민당의 정책을 의회에서 부결시킨다.
서독사람들은「그네정치」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양당정치가 자칫 나치와 같은 일당독재를 다시 출현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서독의 유권자들은 자민당과 같은 「그네」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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