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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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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는 이틀 동안 초소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밤마다 지방 게릴라들의 침투 기도가 있었다. 첫날 밤은 그냥 근거리까지 다가와 사격하면서 집적대다가 날이 밝았고 둘째 날 자정 무렵부터 자동화기와 로켓포까지 동원한 소대 병력쯤의 적이 공격해 왔다. 우리는 크레모어 지뢰와 원형 철조망으로 방어선을 치고 말굽 형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개인화기는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와 M60 기관총 2문이 있었고 여단본부에서 81밀리를 지원했다. 포대에서는 조명탄을 쏘아 올려주고 우리가 불러주는 좌표에 포격을 지원했다. 근접 거리까지 기어와 사격하는 적의 총소리는 울림이 없이 깡마른 폭음으로 들렸다. 새벽 동이 훤히 틀 무렵에 적들은 우리를 우회하여 부근의 교량을 폭파하고 물러갔다. 미군 도로 정찰대가 나타나자 분대는 초소에서 여단본부로 철수했다. 초소 주위의 개인호 속에 있었지만 로켓포 두 발이 떨어지는 바람에 세 사람이 부상당했다. 우리는 트럭에 그들을 싣고 여단본부로 가서 마지막 철수 병력과 함께 헬기로 출라이 부두까지 갔다.

호이안 시 외곽에 자리 잡은 여단의 새 방어진지에 도착했을 때에야 우리는 적의 구정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방어선 안으로 날마다 적의 포격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왔다. 포격이 시작되면 모두들 개인호 속으로 달려가 처박혔는데 몬순이 계속되어 호마다 물이 차서 그 안에 엎드리면 물이 배 위에까지 올라왔다. 상황이 계속되는 서너 시간 동안 호 속의 물에 목욕하듯이 잠겨서 끄덕이며 졸고는 했다. 각 대대와 중대 방어진지로 나가는 식량과 탄약을 보급하는 근무중대 쪽 전방에는 너른 모랫벌과 그 너머에 밀림이 있었는데 언제나 가장 치열한 포격을 당하곤 했다. 좌표를 불러주면 우리 측 포대에서 105밀리 포가 엄청난 폭음을 내며 사정없이 쏘아 댔다. 적측은 잠시 잠잠했다가 밀림 속에서 우리 말로 방송을 해대는 것이었다. 밤에 그들은 우리 유행가를 틀어주기도 하고 호소력 있게 권유했다.

- 여러분 우리는 왜 몇 푼 안 되는 달러에 팔려와 미군의 용병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내일 당장 총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면 다음에는 남진의 '울려고 내가 왔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포성이 멎은 틈새의 짤막한 정적 속에서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잠깐 동안 숨 죽이고 노래를 들으면서 모랫벌 너머의 밀림을 내다본다. 그저 캄캄한 어둠일 뿐이었다. 어느 장교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른다.

- 뭣들 하는 거냐? 좌표 불러주라.

좌표를 부르고 곧 이어서 포격이 시작된다. 엄청난 굉음이 계속되고 밀림에 불빛과 연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스피커가 떠든다.

- 여러분 포를 쏘지맙시다. 양민을 학살하지 맙시다.

이런 난리통 속에 호이안 시내를 월맹 정규군이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우리가 투입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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