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수집한 아시아 문화 유산 식민지 조선 박물관 봉인을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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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교조각 부문에 나온 북제(北齊) 시대 ‘반가사유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 정체성의 구심점이라 할 국립중앙박물관이 모처럼 용기 있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28일 서울 서빙고로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한 ‘동양(東洋)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다.

제목 자체가 함축적 정보를 담고 있다. 1909년 11월 우리나라 최초 박물관으로 창경궁에 문을 연 왕실박물관으로부터 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 이왕가 박물관(미술관), 조선총독부박물관 등으로 변모하며 일제의 입맛과 의도대로 수집된 유물을 뜯어보겠다는 의미다. 일제가 이들 박물관 유물 전시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일본 방식대로 과거화시키려 했던 속뜻을 톺아보자는 것이다.

 ‘왜 이제야’란 아쉬움을 품고 들어선 전시장은 크게 네 분야로 나뉘어 100년 가까이 밀봉돼 있던 식민지 시대의 문화유산 200여 점을 풀어놓았다. 동아시아의 고대, 서역미술, 불교조각, 일본근대미술이다. 지역이나 주제로 분류한 모아놓기다. 전시를 담당한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의 고민이 느껴지는 밋밋한 구성이다.

일본 근대미술이야 이미 2002년에 한번 공개된 적이 있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명을 전한 도래인(渡來人)의 의미를 축소하고 두 나라의 공통점을 강조하려 활용한 한(漢) 나라 등 고대미술 컬렉션을 내세웠지만, 이번에 나온 유물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홀 천장에 있던 벽화.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일제가 문화통치를 위한 대표 자료로 활용했다는 서역미술 코너, 석굴암 등과 동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편년을 기록해 한국과 일본 불교조각의 유사성을 강조했다는 불교미술 진열장도 빛을 잃었다.

 민감하면서도 조심스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풀어내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이광표(고려대 대학원)씨는 최근 발표한 논문 ‘근현대 고미술컬렉션의 특성과 한국미 재인식’에서 일제강점기 박물관에 대해 “식민지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했다는 점, 처음부터 행정력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문화 침탈’이었다는 것이다.

목수현(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씨도 논문 ‘일제하 이왕가 박물관의 식민지적 성격’에서 “일제 문화통치를 1919년 3·1운동 이후라 하지만 이왕가 박물관 설립의 성격으로 보나 고적조사사업이 1902년에 시작되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미 병합 전부터 문화를 통한 통치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이런 맥락을 읽어내기는 꽤 어렵다. 입장은 모호하고, 유물 배치는 갈피를 잡기 어렵다. 뭔가 토로하고 싶었던 학예연구원들의 기상은 좋았지만 현장에 구현한 결과물은 이리 말하면 이렇고 저리 말하면 저렇다.

단 하나, 깨우침은 있다. 일제가 기획한 제국주의적 야심에 동원되긴 했지만 한국도 문화재 약탈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내년 1월 11일까지. 다음달 14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이번 전시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02-2077-900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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