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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방문온 딸애의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유치원이나 국민학교를 가릴 것 없이 요즈음 가정방문이 한창이다.
1년동안 아이들을 맡아 키울 선생님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맡긴 부모님들이나 바쁜 가운데 상면할 기회가 별로 없어 이런 기회는 내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하는가 하는 마음의 부담을 빼고는 말이다.
딸 아이의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시던 날,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차를 준비 했다.
오후 늦게야 피곤한 모습의 선생님이 딸 아이와 친구들을 앞세우고 오셨다.
많은 집을 방문하시며 코피도 많이 마셔서 차한잔도 거절하시고 아이에 대한 것과 교육방침 등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자리에서 일어 나셨다.
나는 망설임 끝에 선생님의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미리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다.
언제나 아이를 맡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이런식으로 해 왔고, 또 다른 뾰족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양하겠습니다. 학년이 끝나는 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면 만족합니다.』정중하면서도 완강한 태도였다.
선생님이 떠난 후 한동안 무안해 뜨거워진 내 얼굴이 식질 않았다. 내 마음과 손이 때묻고 추하다는 느낌 사이로 한줄기 신선한 빚이 꿰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도 아마 내 봉투의 뜻을 전혀 모르시지는 않았으리라. 우리 아이의 잘못을 무조건 눈감아 달라는 것도 아니오, 반장·회장을 시켜 특별대우 받았으면 하는 부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올바른 교육자의 길에 서겠다는 선생님, 우수한 성적보다는 인격의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뜻에 공감하며 신뢰감과 존경심을 느낀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딸 아이가 믿음직스럽게 커갈듯 싶다.
이제는 부담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딸 아이의 선생님을 찾아 뵐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뜻이 상대방에게 진실로 전해질 때 개운하고 거리낄 것 없는 기분은 누구나 느낄수 있는 것이 아닐까.
뜻이 좋으면 결과도 좋듯 매사를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선입감이나 잡음들은 없어질 것이다.
딸 아이의 선생님 말씀으로 가정방문의 뜻이 일부는 곡해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너힉반 필요한 물건이 무엇이니?』
『엄마, 우리반이 제일 나빠. 딴반은 벌써 책상보도 새 것인데….』
내일은 시장에 나가서 선생님 책상에 깔 깨끗한 책상보나 하나 사야겠다.

<경기도안양시비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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