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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배 수확 신품종 벼로 아시아 기근 해결 … 통일벼 탄생에도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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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피터 제닝스(左), 테추 창(右)

매년 이맘때면 추곡 수매가를 놓고 정부와 농민들이 줄다리기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내년으로 다가온 쌀 쿼터제 폐지가 더 뜨거운 이슈다. 아무리 높은 관세를 물려도 쌀 수입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제3세계 국가에 쌀이 부족해 기근을 우려하던 1950년대와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이다.

 20세기는 농업혁명의 시대였다. 주요 작물의 면적당 평균 산출량이 이전보다 4~5배 증가했다. 현재 전 세계 쌀 생산량은 연간 5억t이 넘는다. 품종 개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대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일한 피터 제닝스와 테추 창(張德慈)이 그 기틀을 닦았다. IRRI는 미국 록펠러재단이 쌀 품종 개량을 위해 설립한 연구소다. 제닝스와 창은 61년 10월 설립 준비 중이던 이곳에 합류했다. 제닝스는 벼 육종가, 대만 출신의 창은 유전학자였다.

 연구를 시작한 첫해인 62년 IRRI는 총 6967개의 품종을 모았다. 제닝스는 이들의 교잡종을 빠르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가위로 벼꽃의 수술을 제거하고 다음날 다른 품종의 수술을 털어 넣어 수정시키는 기법이었다. 창은 이렇게 만든 교잡종을 연구해 벼의 키가 정확히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냈다. 대만의 우수 품종들의 수확량이 좋은 이유는 키가 작아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벼의 중요한 성질 대부분은 키와 무관하게 유전됐다.

 62년 제닝스는 창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키가 큰 벼와 작은 벼를 섞어 38개의 교잡종을 만들었다. 그중 여덟 번째 교잡종 낟알을 이용해 새 쌀 품종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 품종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재래종의 다섯 배(헥타르당 5t) 수확을 냈다. 비료를 주면 10배의 수확을 내기도 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농담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이 ‘기적의 쌀’은 66년 말 IR8이란 이름으로 공식 출시됐다. 이 품종 덕에 인도·파키스탄은 대기근의 위기를 벗어났다. 필리핀은 68년 쌀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한국의 허문회 박사는 제닝스와 창의 방법을 세 품종을 교잡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통일벼다.

 제닝스와 창 콤비의 활약 덕에 쌀 기근은 사라졌다. 한국은 경지가 줄어도 꾸준히 연 400만t의 수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효과도 나타났다. 단일품종 대량 경작이 늘며 재래종이 많이 사라졌다. 국가 간 쌀 거래가 급증하며 무역 분쟁을 빚기도 한다. 농약과 비료에 대한 의존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각국의 쌀 육종가들은 여전히 지역적 요구와 생태 환경에 맞는 품종·농법 개량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진정한 영웅이다. 기후변화 극복이나 식량안보도 이들이 없다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이관수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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