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비로 서아프리카 환자한테 가려는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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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에볼라가 무서운 건 높은 치사율이다. 감염자의 절반가량이 숨졌다. 치사율이 70%까지 올라갔다는 주장도 있다. 2009년 지구촌을 휩쓸었던 신종플루의 치사율은 0.035%에 지나지 않았다. 몇 년간 동남아와 중국에 유행한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더 높았으면 높았지 낮지 않은 것 같다. 환자와 긴밀히 접촉하는 의료인이 443명 감염돼 244명이 숨졌다.

 이런 곳에 가려는 의료진이 있을까. 지난 24일 공모가 나간 이후 27일까지 지원한 사람이 벌써 20명을 넘어섰다. 다음달 7일까지 마감하면 더 늘 것이다. 정부 예상 파견 인력이 20명 정도이니까 벌써 경쟁률이 1대 1을 넘었다. 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가 골고루 응모하고 있다.

 모집 공고를 기다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6명의 의사들이 공고 이전 복지부로 전화를 걸었다. 한 내과 의사는 “자비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파견한다니 잘 됐다. 나를 꼭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만약 내가 선발되지 않으면 자비로라도 가겠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다른 의사는 해외 진료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한 응급구조사도 전화를 걸어 보내달라고 타진했으나 이번 파견단에 응급구조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 의료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20여 년간 0.01%의 수재들이 의사가 됐다. 진료 실력만 수준급이 아니다. 그들의 봉사 정신도 세계 수준이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개도국에 무료 봉사를 나가는 의사들이 줄을 잇는다. 국제 보건의료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의사들이 늘고 있다.

 한국 의료진 파견 요청은 유엔이 했다. 현재 미국·영국·쿠바 등 10여 개국이 서아프리카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있는데 한국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교역 규모 세계 10위권인 나라의 국격에도 어울린다. 한국전쟁 때 유엔이 한국을 도왔듯이 이번에는 우리가 나설 차례다.

 27일 출근길에 마주친 후배가 “혹시 서아프리카 파견 인력에 기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가능하다면 자원하고 싶다고. 당국이 언론인 동행 취재를 검토했다가 안전 등을 이유로 없던 일로 하는 바람에 후배가 뜻을 펴지 못하게 됐다.

 복지부에 전화를 한 의사들의 지원 동기는 소명감이다. 소방관은 화마(火魔)에 희생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불 속으로 뛰어든다. 이 역시 소명감이자 직업의식이다. 서아프리카 취재를 가겠다는 후배 기자도 마찬가지다. 의료인들의 숭고한 뜻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