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이탈리아 법인은 당신을 기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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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17일 황우진(50.사진) 푸르덴셜생명 사장에게 이탈리아에서 소포가 왔다. 이탈리아의 푸르덴셜 직원 30여명이 '생일(6월16일) 선물'로 보낸 책자였다. 이 책자에는 직원들의 가족 사진 등이 함께 들어 있었고 그 밑에 "당신은 내 인생의 스승""지금의 제가 있도록 본보기가 되어 주신 데 감사드린다"는 글이 달려 있었다. 황사장은 4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잊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황 사장과 이탈리아 직원들과의 인연은 2000년에 시작됐다. "도무지 실적이 오르지 않는 이탈리아 법인을 당신이 가서 바꿔놓으라"는 푸르덴셜 국제사업 총괄 회장의 지시에 따라 황사장은 이탈리아로 갔다. 당시 황사장은 한국 영업담당 이사로 일하며 한국 법인의 보험료 수입을 매년 두 배 이상씩 키우고 있었다.

이탈리아 부사장으로 부임한 후 그는 '대충 일하는' 문화부터 바꿨다. 그도 밤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틈만 나면 직원들과 어울리며 "성과는 묻지 않겠다. 성실하라. 정직하라. 그리고 고객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라"고 가르쳤다. 게으른 직원의 집을 찾아가 "나한테 거짓말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네 장래가 걱정된다"고 말해 부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양로원에 있는 부모를 외면한 직원에게는 "그게 가족 사랑을 전파해야하는 보험회사 직원의 태도냐"고 호통 쳤다. 그러기를 2년. 2001년 그가 돌아올 때 즈음에 이탈리아 법인의 경영 사정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전세계 법인 중 바닥 수준이던 계약유지율은 세계 수위를 다툴 정도가 됐다. 이탈리아 법인을 되살린 것이다. 이탈리아 직원들은 그 때의 정을 못 잊고 황 사장이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생일 때면 개별적으로 포도주 등 선물을 보냈다.

황사장은 이탈리아에 앞서 1998년 브라질 법인을 세울 때도 현지에 가 직원 마케팅 교육을 하는 등 브라질 법인의 초석을 다졌다. 이탈리아 근무를 마친 뒤에는 본사 총괄 회장이 직접 "미국도 바꿔달라"며 파격적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사장 대우에 보수는 원하는 만큼, 5년 뒤에는 반드시 시민권을 받도록 해 준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황 사장은 이를 뿌리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 직원들을 뽑을 때 마음속으로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 가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남들에게 성실과 정직을 외치던 내가 어찌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나." 황사장은 한국 복귀 후 영업담당 부사장을 거쳐 2003년 10월 사장이 됐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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