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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밀당' … 스마트폰 유통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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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6월 미국 대형할인점 ‘월마트’와 ‘코스트코’는 아이폰5S 가격을 확 낮췄다. 아이폰5S 16기가바이트(GB) 모델 판매 가격(이동통신사 2년 약정 기준)을 99달러(약 10만1000원)에서 79달러(약 8만1000원)로 내린 것이다. 2013년 출시 초기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했을 당시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가격이었지만, 삼성 ‘갤럭시 시리즈’ 같은 경쟁제품들 때문에 인기가 떨어지니 애플이 스스로 단말기 공급 가격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폰과 함께 갤럭시·블랙베리·모토로라 등 각종 스마트폰을 취급하는 이동통신사들의 가격 인하 요구도 힘을 발휘했다.

 물론 애플도 올 9월 아이폰6 출시를 앞두고, 창고에 쌓여있는 아이폰5S 재고를 털어내야 했기 때문에 이통사와 제조사 간 서로 ‘윈-윈’하는 결과였다. 첨단 정보기술(IT)의 각축장처럼 보이는 이동통신 사업은 사실 통신사별로 언제, 어떤 방식의 유통 전략을 펼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대표적 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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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보기엔 ‘누가 더 통화나 데이터가 끊기지 않는 첨단 네트워크(망)를 설치하느냐’에 따라 사업자 간 희비가 갈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패턴을 잘 간파해 마케팅 전략을 유연하게 가져가는게 영업 실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밀어내기(Push)’와 ‘끌어당기기(Pull)’는 이통 사업에서도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유통 전략으로 꼽힌다.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놨을 때는 광고나 입소문을 통해 출시 초기에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겨야 (pull)하며 , 비수기에는 제품을 유통 체인(chain)에 주문 수량보다 얼마만큼 더 많이 밀어내느냐(push)에 따라 실적 부진을 상쇄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받는 단말기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정부가 선을 그은 상한선에 따라 보조금을 결정되도록 했지만, 제조사와 이통사 간 협상 과정에서 시장 기능을 통해 소비자 부담이 줄어드는 게 원칙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소비자들이 얻는 보조금 혜택은 제조사와 이통업체 사이의 밀어내기와 끌어당기기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라며 “정부 당국이 분리 공시를 주장하거나 보조금 상한제도와 같은 시장 기능에 반하는 조치를 내놓는 건 유통적 속성을 가진 이통사업의 기본 생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24일 오후 3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가 일제히 아이폰6·아이폰6플러스 예약판매를 나서자 20분 만에 1차 예약분이 동났다. ‘끌어당기기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애플 매니아’라고 불리는 일부 소비자들은 제조사나 이통사의 특별한 노력 없이도 알아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나선다.

 특히 이통사들은 아이폰6 가입자 확보를 위해 더욱 경쟁적으로 마케팅을 한다. 이때는 제조사의 끌어당기기 전략이 힘을 발휘한다. 당연히 제조사와 이통사 간 힘의 균형은 제조사로 쏠린다. 반면 ‘가입자 쟁탈전’에 나선 이통사들은 꼼짝없는 ‘을(乙)’의 신세다.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끌어당기기 마케팅이 가능할 때, 제조사는 보조금 투하 없이 텔레비전을 통한 광고 활동에만 집중하면 된다”면서 “시장 점유율 확보에 사활을 건 이통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보조금을 더 주겠다고 나설게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보조금 상한선이 34만5000원으로 정해져 있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장의 룰’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공기계 가격이 85만원인 아이폰6(16GB)의 출고가격을 70만원 대에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보조금 상한제가 없었다면 소비자들은 지금보다도 더 낮은 가격으로 아이폰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단통법 도입으로 일부 소비자들만 단말기를 싸게 사는 불공정 판매 상황은 막았지만 일본 소프트뱅크가 실시하는 단말기 ‘공짜’ 제도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결과적으로 단통법은 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챙기기엔 미흡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통법은 제조사도 자유로이 보조금을 쓸수 없게 만든다. 제품 인기가 사라지거나 성능이 뛰어난 경쟁작이 나타나면 ‘갑을 관계’가 역전돼 이통사가 ‘갑(甲)’, 제조사가 ‘을(乙)’이 된다. 올 9월 애플이 북미 시장에서부터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하고, 샤오미·레노보 등 저가 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자 삼성전자도 밀어내기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이때 삼성은 평소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투하한다. 어떻게 해서든 유통망에 자기 제품을 더 많이 내놔야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최대 34만5000원이라는 보조금의 벽에 가로막힌다.

 한 스마트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밀어내기를 감행할 때 제조사는 보조금을 평시보다 100~200% 더 많이 부담한다”면서 “그만큼 시장 점유율 사수가 영업 전략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제조사의 보조금은 시장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주가 시세표’마냥 명백하게 공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통사들이 내놓는 ‘약정 할인의 마술’도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국내 이통사들은 외국에 비해 단말기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내놓는 대신 약정할인 혜택을 많이 주는 요금 체계를 갖고 있다. 예컨대 약정 할인금 ‘1만6700원X24개월(=약 40만원)’를 단말기 가격에 보태면 그대로 스마트폰 가격이 40만원씩 내려가지만, 이통사들은 영업이익 등을 고려해 약정할인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결국 유통의 마법을 이해하는게 이통 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100만원에 판매되는 스마트폰이나 1000원에 팔리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3000만원인 자동차까지 유통망을 거치는 상품은 거의 비슷한 시장 매커니즘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면서 “스마트폰 약정 할인도 결국 자동차 할부 금융을 벤치마킹 한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 간 극심한 차별을 줄인다는 단통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시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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