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69)|제76화 화맥인맥 월전 장우성(88)|일본여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내가 예술원회원이 된 70년에 일본 대판에서「엑스포70」이 열렸다.
문공부의 참관권유도 있고 해서 서예가인 시암(배길기)와 함께 오오사까에 갔다.
나와 동맹한 시암 (초호 시암)은 부산피난시절부터 사귄 친구다.
고향은 조각가 김종영씨와 동향인 경남 창원이다.
일본에 유학, 일본말도 잘할 뿐 아니라 지리며 일본의 풍속등을 잘 알고 있어 여행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암은 문교부예술과장으로 재직한 일도 있을 뿐 아니라 53년 2회 국전때부터 국전 추천작가로 활약하다가 60년 9회 국전부터 심사위원을 했다.
예술원회원도 초기인 57년4월18일에 선거로 뽑혔다.
나와는 부산서부터 친해져 환도 후 그가 서울에 올라와서까지 우정이 이어졌고 국장·예술원 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시암과의 일본 여행을 참 재미있었다. 일본 여행중에는 교포사업가 박 모씨의 초대로 재래식 기생집에 가보았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얼굴에 분을 허옇게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칠한 이른바 게이샤를 처음 대할 수 있었다. 순 일본풍의 요정은 처음이어서 관심있게 보았다. 일본 기생집에는 박사장과 친한 한국일보 대판지 국장 김충한씨와 같이 잤다. 김 지국장은 한국일보 장기형 사장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부터 나와 잘 아는 터여서 술자리에서도 죽이 맞았다.
요정은 일본의 옛날집으로 순전히 다다미방으로 꾸며놓아 일본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런데 차려 내놓은 상이 우리나라 요정음식의10분의1도 못돼 단작스러웠다.
대판박람횔를 잘 구경하고 신간선으로 동경으로 떠났다.
그런대 그때 일본전역이 엑스프70을 보러온 관광객으로 붐벼서 호텔사정이 좋지 않았다.
호텔 예약을 않고 떠나 좀 불안했다.. 다행히 신간선 기차에는 무선전화가 설치돼 있어 차안에서 동경으로도 연락이 가능했다.
시암이 서양화가 이우환군의 주소를 알고 있어서 전화로 연락, 호텔예약을 부탁했다. 이군은 밤이 깊었는데도 동경역까지 나와 잡아놓은 궁성옆에 있는 호텔까지 안내해 왔다.
동경에서 박물관이며 미술관등을 돌아보고 며칠 묵은뒤 하꼬네(상근)로 관광여행을 떠났다.
일부러 일본의 풍속을 살피고 싶어 일본풍의 여관을 찾았다.
가쓰라(계) 호텔에 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호텔이랄수도 없을만큼 초라했다. 입구에 가서 방을 달라고하니 안내양이 몇 사람이냐고 물었다. 두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허술한 방 하나를 주었다.
한참 후 여주인이 차를 내왔다. 우리들을 보더니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알고보니 두 사람이라고 해서 남녀 한쌍이 여행온줄 알고 시원챦은 방으로 안내했던 모양이다.
얼마 후 여주인이 직접 숙박부를 가지고와 써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들이 국적은 한국으로 적고, 직업난에 예술원회원이라고 썼더니 주인이『한국분입니까』하고 다져묻는 것이었다.
그녀는『여태까지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면서『우리 호텔에 귀한 손님(예술원회원)이 찾아오셨다』고 방을 바꾸어 주겠다며 앞장서 나갔다.
못이긴 채 따라나섰더니 꼬불꼬불한 골마루를 숨바꼭질하듯 빠져나갔다.
『이방입니다』하고 후스마를 열고 들어서니 가장자리를 비단으로 꾸민 탄력있는 노란 다다미가 눈을끌었다.
흙벽에 반들반들 비단결 같은 생나무기둥이 순 일본식 방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주인이 직접 저녁상을 들고와 반주를 청했더니 옆에서 시중을 들어줬다.
은어를 구워 대잎위에 받쳐 내놓은게 그렇게 깔끔할 수 없었다.
이 호텔은 자연온천이어서 목욕탕이 유명했다.
목욕도 할 겸 호기심이 생겨서 시암과 함께 혼탕에 들어갔더니 중년부인이 남자들이 있는 둥근 탕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와 계면쩍었다.
저녁에는 여주인이 직접 들어와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눈같이 흰 요위에 비단 쉬트를 깔고 깨끗한 베개를 올려놓아 흡사 원앙금침 같았다.
우리 방 바로 앞의 울창한 숲속에서는 밤새도록 폭포물소리가 들려 나그네의 정감을 더해 주었다.
떠나는 날은 5, 6명의 종업원이 현관에 일렬로 늘어서 우리를 전송하고 여주인이 나무로 깎은 인형을 선물했다.<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