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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정신건강|노인에게 할 일을 주라(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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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인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효도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완만한 살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식이 먹고 살만큼 출세를 하고 나면 나이든 부모가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와 일을 그만두고 집에 편히 계시도록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노인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일감이 없는 무위도식이다.
고층아파트에서 노인이 추락 자살한 사건이 간혹 신문에 보도된다. 시골서 살다가 자식의 권유로 서울로 이사와서 아들네 아파트에 얹혀 살다가 고독에 못 이겨 자살했다는 이야기들이다. 늙은 부모를 편하게 해드리려다 자살시킨 결과가 되었다. 이는 노인성 우울증의 한 증세로 자살한 것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우울증의 빈도는 급격히 늘어난다. 뇌 세포의 활동이 저하되는 생리현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노인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정신적 갈등을 많이 갖고 있다. 노인의 90%는 적어도 하나이상의 질병을 가지고 산다. 신체도 쇠약해지고 죽음을 눈앞에 둔다. 친지나 동년배의 가족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자녀들은 다 독립해서 고독하다. 사회에서 은퇴해서 할 일 없이 한가하고, 역할이 없어 마치 폐물처럼 느껴진다. 이 모두가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인의 상황이다.
살아온 과거가 허무하고 인생이 슬프고 고독해서 견딜 수 없다. 죽고싶은 생각만 난다. 만일 노인이 자살을 결심했다면 젊은이의 경우와는 달리 성공률이 무척 높다. 그래서 노인의 우울증은 위험하다. 일단 고독과 슬픔을 느끼는 노인이 있다면 자살 방지를 위해서도 곧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지만 우울증이 안 생기도록 예방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노인에겐 일감을 드려야 한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노인은 결코 우울에 빠지지 않는다. 일하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자손들과 함께 살아야 행복하다.
자손을 돌보고 교육시키고 함께 놀아주는 것 이상 행복한 일은 없다.
손자들은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구약성서에도 기록돼 있다.
혼자 고독하게 살아가는 것은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또 대인관계가 많은 노인은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친지도 좋고 동네사람도 좋다. 어떤 봉사단체에 참여해서 낯선 사람들과 사귀는 일도 좋다. 활발한 대인관계는 고독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해 준다.
노인 스스로가 이런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손들이 건강에 유익한 여건들을 만들어드리는 일도 중요하다. 문제는 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여건이 필요한가를 자식들이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일이다.
노인은 혼자 시골에 살고 자녀들은 도시에 나와 사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처해진다. 같이 모여 살기 위해 도시로 모셨으면 노인은 일감과 친지 그리고 생활근거지를 잃어버리니까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고목은 옮기면 죽는다>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시골에 계시게 하고 자주 찾아 뵙는 길이 좋을지도 모른다. 떨어져 살 경우는 자주 찾아 뵙는 것이 노인의 행복을 위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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