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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68)|(제76화)화맥인맥 월전 장우성(87)|16회 예술원상 파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7O년에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예술원회원이 되고 1년만에 예술원상을 받았다.
예술원회원이 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예술원상을 탈 때도 한바탕 술렁거렸다. 그때는 예술원이 종로4가 전매회관에 전세 들어 있었다.
해마다 주는 예술원상 때문에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서양화가 김인승씨가 『이번에는 월전이 상탈 차례야』하고 넌지시 말을 빼놓았다.
나는『예술원 회원 된지도 1년밖에 안 되는데 뭐 상을…』하고 사양했다. 옆에서 도상봉씨가『그게 무슨 상관이야. 탈만하면 타는 게지』하고 거들었다.
이렇게 장외에서 발의된 내 예술원상문제는 본회의 때 정식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유예해 놓았다.
얼마 후 예술원 미술분과 회의에서 예술원상 문제가 정식으로 거론되었다.
이때 예술원 회장은 월탄(박종화)이, 부회장은 소전(손재형)이 맡고 있었다.
당시 예술원 미술분과회원은 이당(김은호) 의재(허백련) 청전(이상범) 심산(노수현) 설초 (이종우) 우석(장 발) 오하(이병규) 도천(도상봉) 김인승 박득순 시암(배길기)등이었다.
분과별로 회의를 열어 미술분과에서도 후보자를 냈다.
나와 또 다른 한사람을 예술원상후보로 내놓고 무기명 비밀투표에 붙였다.
1차 투표에서 내가 7표, 박득순씨가 3표 나왔다. 예술원상은 회원의 3분의2 찬성표를 얻어야 받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3분의2선에 걸렸다. 한 표만 더 얻으면 가결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2차 투표에서도 찬성7표, 반대3표로 벽에 부닥쳤다.
2차 투표 결과가 1차 투표 때와 똑같이 나온 걸보고 어느 회원이 나서서『미술분과에서 하는 일인데 누구하나 양보하면 될게 아니냐』고 못마땅한 발언을 했지만 3차 투표에서도 역시 찬성7표, 반대3표로 일관했다.
문학·음악 등 다른 분과는 다 수상자가 결정되었는데 미술분과만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원상은 총회를 거쳐야 확정이 되었다. 총회를 열어 분과별로 경과보고를 들었다. 문학분과는 백 철씨가 몇표 받아서 후보자로 결정되었다고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미술분과는 시암이 분과위원장이어서 앞에 나가『표가 모자라서 후보선정을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랬더니 문학분과에서 구체적인 보고를 요구하면서『미술분과는 어느 분과보다 후보자가 많을 텐데 후보자 선정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하는 수 없이 시암이 다시 나가 『월전이 몇 표, 아무개가 몇 표 받았는데 한 표가 모자라 안됐다』고 말했다.
총회 장에서는 『너무 인색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터져 나왔다. 어떤 회원은『상금을 안주면 국고에 반입되는데, 두 사람 다 상을 받고 남을 사람들을 욕보인다』고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모윤숙씨는『이건 감정이로군. 이럴 수가 없어』하고 미술분과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회장인 월탄은 아무 말 않고 자리에 앉아있고, 부회장인 소전이 벌떡 일어나 『시암! 이거 왜 이래. 다른 분과에서 트집잡아도 미술분과에선 주자고 나서야 할텐데 거꾸로 됐군』하고 다시 의논해 보라고 종용했다.
5분간 정회를 선언하고 미술분과만 밖으로 나가 재차 의논했다. 내일이어서 냉큼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겸연쩍게 그냥 앉아 있었다.
얼마 후 시암이 총 회장에 들어와『미술분과에서 원만히 타협, 월전을 예술원상 후보자로 결정했다』고 발표, 총회에서 확정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71년7월17일16회 예술원상을 받게된 것이다.
이때 나와 함께 예술원상을 받은 사람은 문학에 백 철씨(중앙대교수), 음악에 이주환씨 (국악인), 연예에 윤봉춘씨(영화감독)등 4명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미술분과위원장을 맡았던 시암이 내 화실로 찾아와『미안하다』고 해서『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자』며 종로 뒷골목「낭만」에 가서 서먹한 감정을 풀었다.
내가 처음으로 예술원회원이 될 때도 약간의 방해가 있어 좀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도 소전과 함께 쇠고기를 사들고 이당 선생 댁에 찾아가 오랫동안 불편한 감정을 풀었다.
이당 선생도 내 손목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73년 충무공영정 통일문제가 대두돼 여기저기서 부추기는 바람에 이당 선생과 또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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