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저작권조약 가입과 국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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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출판인들의 국제모임에 나가 우리대표들이 욕을 좀 먹는다 칩시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 그만한 일은 참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리프린트를 규제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저작물의 번역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요구하고 나설 것입니다. 문화적 강자들에게 완전히 굴복하게 됩니다. 버틸 만큼 버텨봅시다.』
『국제저작권가입에 대한 압력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어요. 한미 상공장관회의 때마다 저작권이야기가 나오고 한미문화교류협의회에도 이 문제가 의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문화권에서 중압이 들어오는데 리프린트 규제라는 작은 양보로 큰 것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기우일지 모르지만 어쩌다가 정치적 협상이라는 큰 보따리 속에 저작권가입문제가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고육책이라도 써야합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마련한 저작권법 개정시안에 대한 공청회(지난16일)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 현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창피한 것도 아니고 서글픈 것도 아니다. 다만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느냐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문제는 어느 쪽이 국익이 되는 현명한 대처일 것인가 이다. 그것은 이날의 논의에서 살펴본다면「외국의 저작권가입에 대한 압력의 강요가 어느 정도인가」에 귀착된다. 과연 어느 정도인가.
제안 측인 출협의 민영빈 회장은 자신의 여러 번에 걸친 국제회의 참가경험으로 보아『이대로 가면 2∼3년 안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된다』고 단언했다. 그만큼 위험수위에 올라있기 때문에 미리 피해가야 한다는 것.
민 회장은 국제저작권 조약에 가입하여 번역 로열티까지 물게되면 책을 내지 못하게 될 출판사가 출협가입 1천여 개 사 중 80%인 8백 여사가 된다는 조사결과도 말했다.
리프린트 업계 쪽은 현재 대학의 자연과학·의학서 등의 90%정도가 리프린트이고 종수로도 1만종이 넘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책들에 대해 국내정가의 최하 8%, 최고20%까지 로열티를 지불하고 책을 낼만큼 우리가 부자나라냐는 것이다.
어느 쪽이 국익인지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남아에서 일본만 국제저작권협약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나라들은 갖은 구실을 대어 피해나가고 있는 실정은 우리의 현실에서 깊이 참고가 돼야 할 것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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