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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발등의 불 사립대 통폐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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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립대학들이 통합 몸살을 앓고 있다. 양해각서 체결까지는 일사천리로 순조롭다. 그러나 막상 찬반투표에 들어가면 학내 구성원의 뜻이 제각각이어서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직전이다. 총학생회의 반발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장소를 옮겨 투.개표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007작전이다. 교수마다 의견이 다르고 교직원의 생각은 또 그와 반대니 통합을 하자는 것인지, 하지 말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동상이몽이기는 총장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총장은 총학생회의 편에 서서 교수협의회의 투표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해야 하는데 학과별로 반공개적으로 이뤄져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수협의회는 총장의 반통합적 행동에 실망감을 느낀다고 반박한다.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다. 또 다른 총장은 투.개표를 저지하는 학생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한다. 아무리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고리타분한 법도가 씨알도 안 먹히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총장인데 제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나. 물론 총장의 위신 추락을 감수해도 될 만큼 통합의 절박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보다 당당하게 설득할 수는 없었을까.

전공.학과 폐합도 유사한 양상이다. 한 대학의 3개 유사학과 교수들은 찬반투표에 들어가 단 한 표 차이로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폐합 방침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또는 교수들에게 목이 마르도록 역설해온 총장을 단숨에 허탈하게 만들어 버린다.

통폐합의 진통은 크다. 교수와 교직원 일부는 자리 보존이 힘들다. 보직이 줄고 다른 지역으로 전근이 불가피하다. 교명 변경 등 달라질 분위기에 적응해야 할 학생들의 심적인 혼란도 예상된다. 그렇다고 투표 결과를 공표하는 교수들을 향해 분말소화기를 분사하는 것을 보면 폭도나 다름없다. 동문 입장에서는 모교와 후배가 없어지는 섭섭함을 감내해야 한다. 학생 정원이 줄면 지역사회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것이다. 원만한 통합을 위한 모든 이해 당사자의 대승적인 양보와 협조가 절실하다.

갈등과 부작용이 심화한다고 통폐합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초.중.고.대학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한국 교육이지만 최대 현안은 대학의 구조개혁이다. 대학교육의 질이 국가경쟁력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연간 60만여 명의 고교 졸업자 가운데 84% 정도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부분이 교육여건이 보다 낫고 졸업 후 취업이 잘되는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방 사립대는 학생 공동화 현상으로 아사 직전이다. 사립대 가운데 어느 정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타개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뿐이다. 대학 간 이합집산과 특성화를 추구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어렵다.

국립대의 개혁 몸부림은 성공 여부를 떠나 암담한 현실을 탈피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희망이 엿보인다. 문제는 사립대가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작 대학 내 유사학과 폐합만 거론할 뿐이다. 학교 차원의 자발적인 합병 움직임이 없는 사립대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교육부의 책무가 크다. 위험 경고만 발령할 것이 아니라 관련법 정비와 제정, 재정적 지원 방안을 명시적으로 내놓아 사립대를 자극해야 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 15개 정도를 육성하겠다고 교육부총리가 외친다고 그 목표가 저절로 달성될 리 만무하다. 고교등급제했다고 상위권 사립대학들에 대한 지원금을 몇 억원씩 깎는 밴댕이 소갈머리 정책으로는 백년하청이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