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법 통일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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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방 후 지금까지 양대 산맥으로 갈린 채 팽팽히 맞서온 국문법의 통일 노력이 2O여 년 만에 다시 시도되고 있다. 문교부는 최현배의「말본」과 이희승의「문법」을 분기점으로 해 지금까지 도도히 흐르고있는 두 갈래 학설의 물줄기를 하나로 묶어 고교까지 만이라도 통일문법교과서(국정)를 펴내기로 했다. 문교부의 이 같은 방침은 학자들간의 견해가 엇갈리는 학문적 논쟁을 대학과정으로 미루고,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큰 혼란을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의도에서다.
현재 고교에서는 ▲허웅 ▲이응백·안병희 ▲김민수 ▲김완진 이병근 ▲이길녹·이철수씨가 쓴 검정교과서 5종이 사용되고있다. 이들 교과서는 용어와 체계에서 각각 상당부분에 차이를 보이고있다.
대체로 「허웅 문법」은 최현배 학설을 따르고 그 밖의 것은 이희승 이론을 줄기로 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각기 독자이론이 있어 어린 학생들로서는 이해에 어려움이 많다.
이처럼 각각 다른 교과서를 혼용하면서『올바른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쓰도록 한다』는 문법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교부의 판단이다.
문교부는 이미 지난 63년「학교문법통일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당시 문법학계에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던 최현배. 이희승양씨를 비롯, 그들의 제자 각각 9명씩 18명의 관계 학자를 한자리에 모았다. 줄기찬 논쟁 끝에 얻은 수확이「9품사」와 2백52개 용어의 통일, 확정이었다.
당시 최대의 쟁점은「이름씨」와「명사」의 싸움이었다. 밤늦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뿌리깊은「말본」-「문법」논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 문제였기 때문에 최현배 측과 이희승 축은 이 문제에 이르러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선전이 계속되던 끝에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이희승 측의 승리로 끝났다.「명사」가「이름씨」에 이기고「문법」이「말본」에 이긴 것이었다. 토론이 끝없이 계속되자 집이 먼 세 사람이 빠져나갔고 15명만 남은 가운데 실시된 투표에서 8대7로 이희승 측이 이긴 것이다. 9대9가 7대8로 바뀌어 다수결에 패한 최현배 측은 표결결과가 나오자 즉시 퇴장, 2백52개의 용어만 일괄처리 되고 그이상의 진전은 보지 못했다.
이에 앞서 그 자리에서는 그때까지 품사를 10개 또는8개로 나누던 이론도 9개로 통일, 9품사가 확정됐었다. 최현배의「잡음씨」「이다」「아니다」는 각각「조사」와「형용사」로, 이희승의「존재사」「있다」와「없다」는「형용사」로 통합됐다.
그 뒤부터 모든 고교교과서에는「명사」「대명사」「수사」「동사」「형용사」「부사」 「관형사」「조사」「감탄사」의 9품사와 2백52개의 용어가 통일, 사용됐다.
팽팽한 대립 속에서 이처럼 이희승 측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문교부의 분위기가 품사와 용어는 국어문법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어 교육에도 활용해야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던 데도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진 쪽에서 완전히 승복하는 결과는 아니었고, 앞으로도 학문적 이론을 다수결로 결정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지 앓다.
문교부가 앞으로 1년동안 얼마만큼 이같이 대립된 학설을 조정, 단일 문법체계를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완전한 합의 없이 통일된 부분과 주장이 다른 부분을 뒤섞어 단일본을 만들 경우 오히려 더 큰 논리상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도 없지 않다.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서울대교수) =현재 검정으로 5종류의 교과서가 나왔지만 모두가「학교문법통일안」을 벗어나지 않고, 그 밖의 부분에 저자의 독자이론이 반영될 뿐이다.
고교과정에서 생활문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만약 통일문법을 사용한다면 37년에 나온 최현배 선생의「우리말본」으로 통일해야한다.
그 밖의 문법이론은 이를 바탕으로 약간씩 부분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적인 변혁이론이 학계의 공인을 받으면 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돼야한다.
▲이응백 (서울대교수) =통일문법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반드시 국정으로 할 이유는 없다. 상당한 부분이 이미 통일됐고 앞으로 나머지 통일되지 않은 부분을 조정해가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학자들이 자유경쟁을 통해 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63년 「학교문법통일안」개정 당시는 최현배 선생과 이희승 선생이 참석해 예각 대립을 보였지만 지금은 통일이란 측면에서 보면 최대쟁점이 해결됐고, 하부 구조만 남았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을 거치면 통일안 마련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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