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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의정」에 「쌀 풍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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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미도입부정 국정조사특위 구성 결의안의 처리를 둘러싼 국회의 여야협상은 혼선의 연속이었다.
12일 상오8시 민한당의 당무회의로 시작돼 밤을 넘겨 13일 새벽 2시20분 운영위의 특위구성안 부결, 경과위의 진상파악 소위로 종막을 고하기까지 약l8시간에 걸쳐 5차례의 총무회담, 당대표의 막후협상, 고위당직자간의 절충, 정회와 날치기 동의안, 단독표결등이 점종됐다.
○…11대 국회에서 가장 긴 하루는 민정당 당직자회의, 민한당이 당무회으로 전열을 정비하면서 시작됐다. 민한당당무회의는 임종기총무가 특위결의안을 운영위에 상정→민정당반대로 부결→13일 본회의부의→찬반토론→폐기될 것이라는 예상전황을 내놓으면서 『오늘 사산되면 내일 또 낸다』고 원내전략을 설명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가벼웠다.
그러나 운영위간사회의에서 결의안의 운영위 부상정이란 민정당의 전략을 전해듣고 온 유용근국무총무의 보고로 분위기는 강경쪽으로 돌아섰다.
김원기·한영수·신상우의원 등 전임당직자등이 강하게 대처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상위를 모두 보이코트하자는 안도 나왔지만 지나친 강경론으로 밀려났다. 일단 운영위상정을 목표로 하되 의원들에게는 비상대기령을 내려놓고임총무는 총무회담장으로 떠났다. 이사이 김진배대변인은 외미사건을 5·16후 4대 의혹사건에 비유한 초강경성명을 발표.
갈데까지 간 성명 아니냐
비슷한 시각에 민정당당직자들은 시내 모처에서 전략을 숙의했고 국회에서는 총무단-운영위원연석회의를 열어 당의 최종 세부전략을 점검했다. 즉 특위구성결의안은 운영위에 상정시키지 않으며 그대신 소관 경과위에 소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l차 총무회담(상오10시20분)은 이종찬민정당총무의 선정으로 시작됐다. 그는 민한당성명을 내놓고는 『이런 성명을 내면 갈데까지 다간것 아니냐』고 언성을 돋웠다.
이충무로부터 예상대로 경과위소위안을 받아든 임총무와 이동진국민당총무는 당논조정을 위해 소속당으로 돌아갔다. 상오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운영위는 공전하고 있었다.
이때 다른 창구를 통해 총무희담내용과는 전혀 다른 막간극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재형 민정당대표위원은 유치송민한당총재를 찾았다. 이대표위원은 『국회가 요구했는데 감사원장이 국희에 나와 답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한기감사원장이 3당의 주요당직자와 법사-경과위연석회의에서 보고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유총재는 즉석에서 이를 수락 했다. 이대표위원은 국방위원장실에서 이만섭국민당총재직무대행·황명수의정동우회장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 양해를 구했다.
당대표들의 절층 직후 상오11시40분께 열린 총무회담은 순항이었다. 하오1시에 감사원장의 보고를 듣고, 하오2시에 운영위를 연다는데 쉽게 합의했다. 그러나 임총무가 이민정총무로부터 들은 보고회의 참석자는 이대표의원의 제안과는 달랐다. 즉 3당 주요당직자와 3당 대표·3당3역·법사-경과위의 위원장·3당간사·무소속 l명씩이었던 것.
임총무의 말을 듣자 유옥고부총재가 『그럼 부총재는 빠진단 말인가』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참석대상에서 제외된 당직자 가운데 『때려치워라』는 소리가 나왔다.
순풍이 순식간에 역풍으로 바뀌었다.
○…하오1시20분께 이한기감사원장이 이대표위원실에 나타났다. 곧 국회귀빈식당에는 민정·국민·의정동우회의 참석자들이 모였다. 그려나 민한당측은 나타나지 않았다.
윤석정민정당사무차장이 특사자격으로 유총재를 찾았다. 『사정기관이 공개석상에서 특정사안에 대해 보고하기는 곤란하니 참석범위를 좀 좁혀달라』는 것. 유총재는 『총무회담의 내용과 이대표의 말이 다르다』고 거절했다. 보고를 진행시키려 했지만 이번에는 이만섭총재대행이 『민한당이 올때까지 기다리자』고 보고를 늦췄다.
대표가 말 잘못 전했다
민한당참석을 기다리다 바깥으로 나온 이민정총무는 마침 운영위원장실로 행하는 임총무를 복도에서 잡고 민정당부총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 = 모두 기다리는데 들어가자.
▲임 = 없었던걸로 하고 운영위나 하자.
▲이 = 이대표가 말을 잘못 전했다더라.
▲임 = 그건 급한 문제도 아니고 운영위 개최와는 별개의 문제다.
임총무는 점점 흥분하더니 당소속경과·법사위원들은 내가 못들어가게 한줄 안다. 우리를 죽이려는 계획적인 사령탑이 있는것 같다고 언성을 높였다.
민한당측의 강경한 태도에 민정당측은 또다시 그럼 연석회의를 하자고 했으나 한번 격앙된 민한당측 분위기는 가라않지 않았다.
○…이 사이에 민정당측은 결의안을 운영위에 상정해 부결시키고 경과위소위만 구성한다는 절층안을 마련했다.
하오2시께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다시 열린 총무회담에서 이민정총무는 결의안을 운영위에 상정, 처리하되 븐회의에는 내지말고 경과위소위안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임총무는 난색을 표했다.
모든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을때 밖에 나갔다온 권정달민정당사무총장도 유총재와 외무위원장실에서 단독 대좌했다. 유총재는 총재실로 돌아와 유옥고·이태구부총재·임총무·유한렬사무총장·한영수의원을 불러놓고 『민정당이 경과위소위를 내놓는데도 굉장히 노력을 했다니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지 않느냐』고 달랬다.
민정당의 이러한 협상타결 노력도 경과위의 미숙한 회의운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운영위는 하오3시35분에 열렸다. 회의는 숨가빴다. 그때까지의 상황과는 달리 느릿느릿 진행됐다. 8·3조치 폐지법률안이 통과됐다. 이종찬위원장이 잠시 의원장석을 떠나 밖으로 나갔다. 경과위의 민정당간사인 신상식의원이 불려내려왔다. 경과위소위를 구성하라는 작전지시의 시달이었다.
신의원의 통보를 받은 천영성경과위위원장은 사회봉을 굳이 마다하는 이형배의원(민한)에게 맡기고 신의원과 잠시 밖으로 나갔다. 곧 민정당의원석에 쪽지가 돌았다. 의원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김준성부총리의 답변이 막 끝난 하오 5시께 신의원이 미국미 진상파악소위를 구성하자는 긴급동의를 전격적으로 제안했다. 한방먹은 꼴이된 야당의원들이 퇴장하려고 일어설때 천위원장은 동의안의 성립을 알리는 방망이를 쳤다.
위원장실, 소회의실에서 야당의원들은 『이런 사희가 어디있느냐』 『의사일정과도 상관없는 동의가 웬말이냐』 『위원장 사퇴하라』고 한영수 이형배 이석용 홍사덕의원등 민한당소속 경과위원들이 흥분해서 『날치기 통과다』하고 소리치며 의원실로 몰려오자 당직자들을 무마중이던 유총재도 발끈했다. 『당장 임총무를 불러오고 전상임위를 중단시키라.』
사태는 급전식하-. 험악한 공기가 휘몰았다.
운영위는 특위구성결의안 심의를 앞두고 중단됐다.
유총재는 하오7시에 원내대책회의를 소집하라고 지시하고는 『볼일이 있다』고 국회밖으로 나갔다. 비슷한 시각에 권총장은 이두완대변인등과 함께 이른 저넉을 먹으러 나갔다.
이민정총무는 경과위의 천위원장·신상식의원·이형배의원·조순형의원을 운영위원장실로 불렀다. 이총무는 소위구성은 민정당이 끝까지 밀고나갈 생각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회의를 계속 진행해 달라고 회유했다. 그러나 이·조의원은 막무가내, 『대화가 이뤄지기 전에 먼저 민정당의 동의안을 철회하라』고 버텼다.
곧 열린 4차 총무회담에서 이민정총무는 『경과위소위를 받아들인다면 동의안은 철회하고 3당공동으로 다시 발의하겠다』고 양보했다.
그러나 임총무는 『국정조사적인 권한을 본회의 결의에 의해 경과위소위에 부여하지 않는한 안된다』고 맞섰다. 회담은 또 깨졌다. 이총무는 『총무단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무적인 총무단이 되버렸다』고 한탄.
텅빈 야석향해 "기립표켤"
○…5분동안 정회하기로 한 운영위는 밤11시40분까지 열리지 못했다. 민정·민한·국민당은 제각기 뾰족한 결론없는 원내대책희의만 거듭했다.
밤9시30분께 이만섭총재대행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권정달총장의 밀담요청이었다. 3당중진은 몰래 국회의장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권총장은 역시 종전의 입장이 민정당의 최종입자임을 강조했다. 경과위소위구성안의 민정당 단독처리에 앞선 마지막 절충이었다. 유·이씨의 태도는 마찬가지. 본희의 결의로 국정조사권을 주라는 주장만 되풀이됐다.
밀담장소에서 자기방으로 내려온 권총장은『함께 텔레비전의 장희빈프로를 봤다』며 피곤한 표정. 권총장을 찾아가던 이총무는 『아, 답답하다』고 혼잣말로 푸념했다.
마지막 총무회담(밤10시30분)은 각당의 변함없는 입장의 재확인이었다. 임총무는 본희의서 결의안을 심의않을 경우 민한당이 불참할지 모른다고 통고했고 이동진국민당총무는『참석해서 토론한다』는 입장을 천명.
밤11시45분 경과위가 소집됐다. 참석자는 위원장을 포함한 민정당의원10명뿐, 야당의석은 비어있었다. 천위원장은 『미국미진상파악 소위동의안을 표결에 붙인다』고 사회봉을울 쳤다. 표결방법은 기립표결.
천위원강 (텅빈 야당석을 향해) 『반대하는 분 기립해 주십시오』(잠시 쉬었다가) 『앉아 주십시오』『찬성하는 분 기립해 주십시오』(민정의원 전원 기립) .
표결은 3분만에 끝났다. 재석 10명중 찬성 9명, 기권 1명 (천위원장).
경과위는 과기처정책질의를 미루고 밤11시52분 산회했다.
운영위도 비숫한 시각에 속개됐다. 자정을 지나면서 4차회의를 끝내고 5차회의를 시작해 질의와 찬반토론은 계속 됐다. 이미 정해진 부결이란 종점을 향한 말씨름은 공허했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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