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상업화 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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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회는 있으나 종교는 없다」는 소리가 요즘 우리사회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변질되고 침체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사회의 지탄과 비판의 소리다.
한국기독교는 지금 새바람 속에 새로 태어나야 할 역사적 과제앞에 서 있다. 교회의 기업화와 팽창주의 그리고 이기주의 경향에 대한 교회갱신의 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교회안에서 교역자들 스스로에 의해 그런 반성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기독교 「신풍운동」이 교계의 대표적 교역자들을 모아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비전과 과제』를 논의한 것은 바로 그러한 한국기독교회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한 결과다. 벌써 12년전에 고창되었던 「신풍」의 요청이 오늘에도 거듭 외쳐져야 하는 현실에도 문제는 있다.
그것은 일면 우리 기독교회의 상업화현상과 부패를 반영할 뿐 아니라 나태와 무감각으로 선명하기도 한다. 그것은 기독교도들이 크러스천적 신앙의 진실을 수호하려는 의욕을 잃고 신앙의 사명속에 새로 태어난다는 정열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기독교는 그동안 외형적으로는 세계 제일의 양적성장을 이룩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교희와 십자가는 눈에 띄고 있다. 신자수도 인구의 4분의 1을 자랑하고있다.
그러나 교회의 역할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심지어 교회는 사회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바로잡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오염된 사회가치관에 물들고 있다. 교회의 대형화나 기업화, 교역자의 사리추구와 권세선망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교회는 무조건 신자가 많아야 하고 교회예산도 무조건 많아야 한다는 인식이 신자와 교역자 사이에 미만해 있다.
그래서 신도쟁탈전도 벌어지고 교회권태증도 만연하고 있다. 물량주의는 교회를 부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역자가 가난한 봉사자로 활동하던 예수의 이미지를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 교회에 기여하는 신도만이 중시되는 풍토속에서 복음의 선포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위선이며 죄악일수도 있다.
예수가 행했던 것처럼 가난하고 슬픈자, 사랑을 베풀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 옳은 일을 하다 박해받고 갇힌 자들을 사람하고 그들과 일체가 되는 노력이 없다면 그같은 신앙은 거짓신앙일수 밖에 없다.
「정의와 평화의 선포」라는 기독교신앙의 사명을 망각하고 교회가 축재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실로 기독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 신복신앙 풍토와 맹신의 강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구원의 욕망은 물론 인간적인 본능이지만 기독교의 구원은 언제나 전인류의 구원이란 점이 흔히 망각되고 있다. 이웃과의 유대없는 개인의 구원은 기독교신앙에는 없다는 신념이 강조되어0야겠다. 사회구원의 하느님선교는 오늘의 과제인 것이다.
신앙은 사유화될 수 없고 은총 또한 사유화될 수 없다. 그러니까 미신적인 악령체험이나 주술신앙의 강조는 위험한 것이다.
단세포적인 개인중심의 이기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며 전인적이고 균형있는 신앙생활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한국적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편협과 아집에서도 탈피해야겠다.
한국사힉의 구체적 상황에 항상 응답하는 한국신학의 정립은 필요한 것이지만 교회일치를 외면한 고립주의 신앙운동은 극복되어야겠다.
오늘의 한국기독교는 민족분단과 사회불화의 현실에서 평화와 정의실현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신앙을 연마해야할 것이다.
그런 과제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 기독교가 이기주의·분파주의의 수렁에서 벗어나 「소금과 빛의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반성과 갱신을 호소한 기독교계의 신풍운동은 교회안팎의 공감을 일으켜 한국교회재생의 계기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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