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Online 온라인] 울리고 웃기는 인터넷 신조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이 최근 네티즌들과 온라인 대화 도중 '찌질이'라는 인터넷 신조어를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댓글 형식의 토론을 벌이다 자리를 뜨며 "열심히 노세요. 이 찌질이 친구들아!"라고 인사말을 남기자 네티즌들이 "찌질이가 무슨 소리인지 알고 썼느냐"며 크게 반발한 것이다. '찌질이'란 흔히 한심한 댓글을 다는 네티즌을 비하적으로 일컫는 말이란 얘기다.

다음날 임 의원은 게시판을 통해 '아이고, 내 새끼야!'라는 표현을 예로 들며 "친해지기 위해 정감을 담아 반어적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요지의 해명을 했다. 일부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며 '찌질이'의 용어 정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안 그래도 이 사이트에 정치인이 전용게시판을 만든 데 반감을 갖고 있는(본지 5월 27일자) 다수 네티즌을 달래기는 쉽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우호적으로 쓰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동질감을 느끼는 이에게서나 그렇지 이질감을 느끼던 사람에게서 듣는 건 상당히 모욕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여학생들을 향해 '빠순이'(오빠부대)라는 말을 썼다가 친근한 인상을 주기는커녕 구설에 오른 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찌질이는 오프라인에서도 부정적 어감이 강하다. 학원폭력과 관련해 집단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뜻하기도 하고(본지 5월 12일자), 청소년들의 정의에 따르면 "잘나가는 애들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애들" "짱들과 붙어다니거나 짱이랑 친분이 많은 아이들"(청소년사이트 아이두 사전)로 통용되기도 한다. '코찔찔이'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기존 우리말 중에 찾는다면 '지질하다'(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와 가깝다. '찌질대다'라는 동사도 쓰인다.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요즘의 신어들은 어원이 불확실한 데다 숱한 네티즌의 손을 거치면서 의미 분화도 빠르게 진행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정반대 의미로 바뀌기도 한다. '즐거웠다''즐겁게 ~하라'는 말이었던 '즐'이 '꺼져'라는 식으로 쓰이는 게 대표적이다. 원래 초등학생의 줄임말인 '초딩'은 이제 욕설과 비속어를 즐겨 쓰고 안하무인의 인터넷 예절을 보이는 네티즌을 가리키는 말로, 아르바이트를 줄인'알바'는 상대방이 일방적인 비난이나 호평을 늘어놓을 때 공격하는 말로 각각 쓰인다. 돈 받고 글 쓰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물론 모든 네티즌이 댓글 달기에 열심인 것은 아니어서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을 가리켜 '눈팅족'이란 말도 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매년 조사하는 신어 가운데 컴퓨터.통신 관련 용어는 점점 그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2002년 전체 신어 408개 중 15개(3.7%), 2003년 656개 중 25개(3.8%)였던 것이 2004년에는 626개 중 46개(7.3%)다. 이 중 댓글 관련 용어는 2003년 가치중립적인 '리플족'(reply+族, 댓글이나 답글을 올리는 사람)을 시작으로, 2003년 '욕티즌'(욕을 담은 글을 올리는 사람), 2004년 '악플러'(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사람)가 각각 신어에 수집됐다.

국립국어연구원 김한샘 연구원은 "신어는 대중의 호응을 받으면 널리 쓰이게 되지만, 몇 사람이 쓰다가 사라지기도 한다"면서 "언어의 생성과 소멸은 강제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언어의 역사성을 상기시킨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지금 만들어 쓰고 있는 신어가 곧바로 우리네 인터넷 문화의 역사인 셈이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