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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혹시 내 아이가 영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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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아이가 영재는 아닐까."

부모라면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그런 만큼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고 오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오해 중 대표적인 게 어린 나이에 뛰어난 지적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아닐까.

▶ 영재성은 나이가 들어 나타날 수도 있고 교사나 부모의 무관심으로 묻혀 버릴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인하대 과학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하는 영재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신인섭 기자

하지만 박제남 인하대 과학영재교육원장이 '진짜 영재'로 꼽는 다섯 명의 사례를 살펴보면 영재성은 조금 늦게 발휘될 수도 있고 교사나 부모의 무관심 등으로 자칫 묻혀버리기 쉬웠다.어떤 아이가 영재인가에 대한 정답도 찾기 어려웠다.

◆시작이 더딘 영재도 있다=영재아이라고 배우는 속도가 빠른 것만은 아니다. 답답할 정도로 더딜 때가 있다. 그렇지만 점차 가속이 붙는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의 흥미를 키워주고 다소 느긋할 정도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부모의 태도다.

강한(인천 안남중3)의 아버지 김선빈(46)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5명의 '진짜 영재' 사례로 본 영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래픽 크게보기

"초등학교 1학년 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문제를 답답하게 풀고 진도도 뎌뎠어요. 수에 대한 흥미를 길러주려고 노력했죠."

강한이는 세 살 때 한글을 혼자 깨치고 동화 테이프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등 영재성이 보였지만 부모가 아이의 재능을 깨닫게 된 건 한 영화를 통해서였다.

"'큐브'라는 영화가 있어요. 수학 이론 등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데 엄청나게 반복해서 보더군요. 한 장면을 수십번 돌려 보기도 했어요." 김씨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수학에 재능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부산 과학영재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유근(8)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송수진씨는 "유치원을 그만두고 처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공책에 글을 한 줄도 못쓸 정도였다"면서 "계속 지도하다 보니 수학쪽의 학습능력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부에 속도가 붙고 이제는 수학 세 문제를 풀기 위해 14시간 동안 꼬박 앉아 있는 등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교사가 뒤늦게 발견한 재능=영재성은 어린 나이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늦게 재능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태룡(인천 계산고2)과 경빈(인천 인성여중3)이 그런 예다. 교사들이 찾아낸 숨은 진주인 셈이다.

중1 때 수학 담당 이은재 교사의 소개로 영재교육원에 온 경빈이의 사례를 살펴보자. 경빈이가 주목을 받은 것은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부터. 하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에서 유독 빠른 이해력과 응용력을 보여 이 교사가 눈여겨 보던 터였다.

이 교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았는데 선행학습을 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학적인 이해도 빠르고 응용도 잘했다"면서 "미리 배워 온 아이들은 그 틀을 벗어나면 어쩔 줄 모르는데 경빈이는 자기 방식으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태룡이는 영재교육원으로 오면서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된 경우다. 여기서 접한 새로운 내용에 흥분한 상태라고 했다.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수업태도가 산만한 데다 행동이나 생각이 특이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던 태룡이를 홍래순 수학교사가 영재교육원으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교사의 무관심이 빚은 부작용=반대로 면후(8)의 이야기는 교사의 편협한 무관심이 영재아를 얼마나 위험한 상황까지 몰고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면후는 18개월이 되기 전에 한글을 깨치고 두 돌 반 때 천자문을 읽은 아이. 세 살 때 엄마 송영희씨가 떡을 겹쳐서 자르는 걸 보고 "2×1=2, 2×2=4, 2×3=6……"이라며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구구단을 외워 엄마를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난 면이 있었다.

부모는 고민 끝에 초등학교에 조기입학시켰지만 그 선택은 곧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담임 교사가 아이의 영재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탓이다. 수업에 지루함을 느낀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고 눈썹을 뽑는 등의 문제 행동을 보여도 교사는 방치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가위로 머리를 잘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학 시험 문제를 실수로라도 틀리면 담임은 "거봐, 지가 뭐가 그렇게 대단해. 틀리는 것 봐"라며 면박을 줬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2학년 때 면후를 인정해 주는 담임을 만나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예전에 보여줬던 집중력이나 공부습관을 잃었다. 특히 아이 스스로 친구들과 속도를 맞추려고 지식 습득을 자제하는 눈치가 강했다.

결국 부모는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영재교육원의 첫 테스트에서 고1 수준의 문제까지 너끈히 풀어낸 면후에 대해 박제남 원장은 "교사의 편협한 마음으로 인해 아이가 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라면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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