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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이후 소설 통해 새 시대 조명|9명의 여류학자가 엮은 『소설과 사회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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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거울이라 할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감득할 수 있는 생의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사상 이해의 깊이와 폭을 더하게 한다. 인간의 삶 속에 직접 뛰어들어가 그 살아있는 경험을 그려내는 촉각 지향적 문학매체인 소설을 통해 인간은 보다 구체적으로 시대 정신의 맥박과 체온과 숨결과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지문·최영씨 등 문학 전공의 9명의 소장 여류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소설과 사회사상』(민음사 간 사회과학 총서8)은 그 책에서 다뤄진 작가들이 처했던 시대적·공간적 특수성을 초월하여 8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자신의 삶을 들이켜 보게 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한다.
서지문 교수(고려대·영문학)는 『위험한 안락의자-소설을 통해 본 전환기의 영국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18, 19세기 소설에 나타난 여성의 고뇌를 분석했다.
영문학상 최초의 본격 소설이라 할 「새뮤얼·리처드슨」의 『파벨라』에 이어 「헨리·필딩」의 『톰·존즈』, 「월터·스코트」의 역사소설,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샬러트·브론티」의 『제인 에어』 등에 나타난 여 주인공의 성격을 연구한 것이다.
이들 여주인공들은 흔히 천사같이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이고, 생명과도 맞바꿀 정도의 강한 정조관념을 가졌다. 남다른 지성과 영혼의 욕구를 가진 여성은 사회적 인습과 제약에 의해 재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도 지적되었다.
근대화로의 전환기인 18, 19세기 영국 여성의 고뇌는 두 가지 요인으로 비롯된다고 서 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즉 여성의 사회경제 활동의 가능성이 전적으로 박탈됨으로써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여성은 삶의 기본적인 여건과 삶의 의미를 남성의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최선씨(고려대·노문학)는 『「고글리」의 단편 「외투」에 나타난 그로테스크한 사회』를 통해 자신의 극도로 좁은 세계에 폐쇄되어 있는 한 인간의 의식 세계를 분석.
제정 러시아 말기의 모든 정상적 가치관이 전도된 그로테스크한 현실에 처해서도 예술과 종교를 통한 사회 정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한 러시아 지성인의 고뇌를 접하게 한다.
장정자 교수(충남대·독문학)는 「헤세」가 본 예술가의 현실-예술가는 인간존재의 원형을 산다』를 통해 『데미안』 『싣달타』 『유리알 유희』 등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현실을 초월한 절대적 개인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성자와도 같은 예술가에게서 인간 고유의 삶의 의미와 이상적 모습을 찾고자 한 「헤세」의 구도적 문학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인지발전에 대해 인간이 갖고있는 맹신을 비판하고 개인의 권리가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에 의해 파괴되는 현실에 대한 실망도 담고 있다.
성현자씨(이대강사·국문학)는 『노신 소설의 사회와 인간-창작집 「눌함」과 「방황」을 중심으로』를 통해 사회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가지면서도 사회 부조리 현상의 일단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지성인의 양심을 얘기하고 있다.
전혜자씨(덕성여대 강사·국문학)는 『유미주의 수용과 동인소설의 유미적 경함』에서 동인의 대표작 『감자』 『광염소나타』 등을 다루고 있다. 동인의 세기말적 분위기에 가득 찬 소설은 당대의 암울하고 절망에 찬 사회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병폐적 사회분위기의 적나라한 표현이라고 전씨는 지적한다.
이연행 교수(전북대·불문학)는 『「앙드레·말로」의 「희망」과 30년대 유럽의 반 파시즘운동』을 분석하면서 「말로」가 끊임없이 파고든 지식인의 사회참여와 이데올로기의 맹신에 대항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시켰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존·스타인벡」작품에 나타난 사회비판 의식과 인도주의』를 통해 최영 교수(이화여대·영문학)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인간을 주의나 이윤의 도구로 타락시키는 사회체제의 불합리성을 맹렬히 비관한 「스타인벡」의 문학세계를 펼쳐 보인다.
『미국소설에 나타난 사회정의와 적법성 문제』에서 이영옥 교수(성균관대·영문학)는 「펜·워런」의 작품을 분석하여 사회정의와 적법성간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인간 내재악의 발현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정혜영씨(연세대강사·시문학)는 『「하인리히·뵐」의 소설에 나타난 현대 독일사회상』을 통해 역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사회의 한 집단 세력인 언론의 횡포를 통해 70년대 독일사회의 부조리 현상을 고발한다.
대표집필자 최영씨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난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의 표명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람과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지적 풍토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썼다』고 얘기한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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