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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개똥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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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신발 밑으로 심상치 않은 질감이 다가왔다. 발을 들어 사태를 확인하는 순간 프랑스 친구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봉 샹스(Bonne chance·행운을 빈다)!” 프랑스에는 왼발로 ‘그것’을 밟으면(물론 고의가 아닌 경우에만)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프랑스에서 일하던 시절 좌우 가릴 것 없이 여러 차례 봉변을 당했지만 특별한 행운은 없었다. 고약한 냄새만 따라왔다.

 익히 알려진 대로 파리의 거리에는 애완견 배설물이 널려 있다. 뒤처리를 하지 않은 주인에게 범칙금을 물리는 법이 있지만 스티커 발부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이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에서 어떻게…”라고 투덜대면 십중팔구 이런 대꾸가 돌아왔다. “청소부의 실업을 막기 위해서.” 억지스럽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파리의 구청마다 다수의 거리 청소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오토바이에 큰 진공청소기를 싣고 다니며 ‘지뢰’들을 제거하거나, 대형 물차로 거세게 물을 뿌려 오물이 하수구로 흘러가도록 한다.

 프랑스에서는 동네의 프랑스철도공사(SNCF) 영업소마다 인터넷이 아닌 직원과의 대면을 통해 기차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자동화에 대한 반감의 표시인 경우도 많다.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한국에서 사업하는 ‘김 사장’은 국내 고속도로에서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톨게이트 직원 줄어드는 게 가슴 아파서”가 이유다. 그것이 프랑스적 미덕이라고 그는 믿는다.

 요즘 프랑스는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종사·의사·약사·공증인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축이다. 조종사들은 에어프랑스의 저가항공 사업 확대가 자신들의 연봉 감소를 유발할까봐, 약국 주인들은 인접 지역 개업 금지 등의 보호 장치를 폐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진입 장벽’을 지키려고 거리로 나왔다. 국가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일들인데 연 소득 2억원이 넘는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다. 이웃 영국·독일에 비해 실업자가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인들의 영·미식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국가 통제 자본주의로 고도 성장을 이룩한 ‘영광의 30년’에 대한 향수로 설명한다. 오래 전 그 영광이 끝나고 청년실업률이 25%를 넘나드는데도 새 일자리 만드는 데는 인색한 프랑스 중산층들, 청소부나 매표원의 고용 안정에 대한 그들의 걱정이 점점 더 ‘궤(‘개’가 아니다)변’처럼 들린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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